‘고구려 패션’ 어떤게 진짜?…드라마 타깃층따라 변화

  • 입력 200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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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진짜 고구려 시대 옷이지?’ ‘고구려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TV 드라마 등장인물의 의상을 패러디한 패션이 젊은 층 사이에서 화제다. 하지만 드라마에 비친 고구려와 고구려 사람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고구려 시대를 다루면서도 출연자의 패션이 제각각이어서 시청자들은 어느 쪽이 진짜 고구려 의상인지 헷갈린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드라마 제작진이 기획 의도와 타깃 시청자 층의 취향을 감안해 의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중년층은 고구려를 민족의 혼이 서린 역사로 받아들이지만 디지털 세대에게 고구려는 상상력과 판타지의 세계”라며 “고구려에 대한 인식의 스펙트럼이 세대별로 다르다 보니 고구려 패션이 중구난방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증 충실파-중장년층 겨냥

‘갑옷은 안악3호 무덤과 덕흥리 무덤 벽화를 참조할 것. 재료는 가벼운 스테인리스 금속 사용….’

SBS 드라마 ‘연개소문’의 의상을 맡은 SBS아트텍 사무실엔 고구려 벽화 자료가 널려 있다.

SBS아트텍 이해련 부장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을 재창조한다는 원칙”이라며 “벽화에서 영감을 얻어 당시 고구려 무사들의 기개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연개소문은 불그스름한 금속 조각이 촘촘히 붙은 갑옷을 입고 나온다. 고구려 갑옷은 실제로 미늘(비늘 같은 쇳조각)을 촘촘히 이어붙인 게 특징. 다만 극중에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스테인리스를 사용했다. 고증에 충실한 덕택에 스토리의 비현실성과는 별개로 연개소문이 고구려 벽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하다는 호평을 받기도 한다.

타깃 시청자 층이 겹치는 KBS1 드라마 ‘대조영’(16일 첫 방영) 제작진도 의복, 군 복식, 머리 양식 등의 분야에서 11명의 전문가에게서 엄격한 고증을 받았다.

KBS아트비전 유수정 차장은 “고구려와 당의 의복 문화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며 “초기의 대조영 패션은 철저하게 고구려의 복식을 고증한 결과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 ‘고구려=판타지’ 젊은 층에 어필

반면 MBC ‘주몽’ 측은 “드라마는 허구인 만큼 고증보다는 상상력을 중시하겠다”는 입장이다. MBC 미술센터 봉현숙 부장은 “고증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문을 받았다”면서 “10, 20대의 젊은 층 취향을 고려해 현대 감각에 맞게 출연자들의 옷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주몽’ 의상의 특징은 캐릭터를 살리는 화려한 색감. 주몽은 열정적인 붉은색, 라이벌인 대소는 차가운 파란색이 상징색이다.

드라마에서 신녀 여미을의 의상은 단연 화제다. 목 뒤에 꽃 모양 받침을 고안한 옷은 어느 벽화에서도 볼 수 없는 상상의 산물. 인터넷에선 여미을의 옷을 다른 여성 출연자에게 입히는 패러디가 유행이다.

김종학프로덕션이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소재로 제작 중인 ‘태왕사신기’는 주몽보다 한 술 더 떠 아예 고증을 무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패션 디자이너 박윤정 씨는 “이 세상에서 본 것 같지 않은 환상적인 갑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하늘거리는 시폰 소재와 몽환적인 파스텔 톤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에 필적할 만한 한국적 판타지를 표현하겠다는 것. 그런 유의 영상에 익숙한 젊은 층에 어필하려는 시도라는 게 방송가의 분석이다.

한양대 임지현(역사학) 교수는 “고구려 열풍의 근간이 민족주의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다만 드라마의 고구려 패션이 시청자 성향에 따라 분화되는 현상은 민족주의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가 크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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