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사형장이 어른”… ‘우리들의…’ 사형수역 강동원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8분


14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세상을 등진 사형수 윤수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김미옥 기자
14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세상을 등진 사형수 윤수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김미옥 기자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부유하지만 불행한 유정 역할을 맡은 이나영.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부유하지만 불행한 유정 역할을 맡은 이나영.
《여자들에게 강동원은 ‘비현실’이다. 순정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가녀린 외모 때문. 그만한 아들을 둔 중년의 여성 영화평론가가 그랬다. “시사회에서 그의 뒷자리에 앉았어요.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데, 너무 잘생겨서 인간 같지가 않더라고.” 그게 문제였다.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언제나 ‘꽃미남’이었다. 그런 그가 14일 개봉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 역을 맡았다. 5일 약속 장소, 헐렁한 반바지에 면 티셔츠, 슬리퍼 차림의 그가 뛰어들어 왔다. 전날 시사회 뒤 술을 마셨다는 그는 “빈속에 마셨더니 기억이 안 나요”하며 커피를 들었다.》

―모든 여성의 꽃미남으로 살아가는 건 어때요?

“(눈을 크게 뜨며) 별로 좋지 않아요.”

정말일까? 날렵한 콧날과 갸름한 턱선, 슬리퍼 끝에 나온 발가락까지 은근히 쫙 훑어봤다.

―이번 배역이 ‘배우 강동원’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

“하나하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거죠. 이번에 잘해도 다음에 못할 수도 있는 거고.”

시사회 이후 그의 연기에 대해 호평이 이어졌다. 그는 세상에 대한 적개심에다 가끔 보이는 순수함과 수줍음까지 다양한 심리를 표현했다.

―첫 부분에서 황폐한 눈동자 연기가 압권인데요.

“제일 오래 찍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찌를 수 있나 고민하면서 찍었는데. 감독님도 표정 좋다고.”

―시사회에서 사람들이 많이 울었어요.

“전 어제 세 번째 봤는데도 울었어요. ‘제가 찍고선 제가 운다’고 할까봐 손바닥으로 얼굴 가리고 살짝 살짝 눈물 닦으면서 봤죠.”

―이 영화는 속을 털어놓는 ‘진짜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거잖아요. 연예인으로서 그러기 힘들지 않나요. 이미지 때문에 하고 싶은 얘기 못하잖아요.

“무슨 말을 해도 돌 던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저는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편이에요. 어제 시사회에서도 그냥 포괄적으로 말한 건데. 오해가 많았어요. 전 무신론자거든요. 아, 이것도 말이 너무 세다. 저는 ‘무교’예요. 댓글요? 가끔 보는데. 어제 최고 댓글은 ‘이것도 영화 홍보다’라는 거. 하하.”

그는 시사회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고 말해 작은 논란을 빚었다. 그가 ‘사형 반대’는 아니라고 전제를 깔았는데도.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영화 속 피해자 어머니처럼 용서할 수 있나요?

“말하기 힘든데. 영화 때문에 사형수도 만나봤는데 그들도 사람이더라고요. 헷갈려요. 실제로 여의도 광장 차량 질주 사건으로 손자를 잃은 할머니는 며느리까지 홧병으로 죽었는데 용서하셨다고 해요. 저요? (머리를 긁적이며) 에휴. 힘들죠. 도 닦아야 돼.”

―사형수를 연기한 느낌은 어땠나요?

“자꾸 꿈에 나와요. 사형 당하러 끌려가는 꿈. 근데 진∼짜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 울다 깨기도 했어요. 목 매달리는 순간의 공포!”

―카피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그 찬란한 기적’인데, 동원 씨는 그 기적을 느껴봤나요. (그는 어색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녹차 음료 뚜껑을 땄다.) “글쎄요?”

―촬영 중인 ‘그놈 목소리’에서도 범죄자 역할인데요.

“예상되는 캐스팅이면 재미없잖아요. 나영이 누나(이나영)가 그러는데 범죄자 같지 않아서 더 좋데요.”

―‘꽃미남’이라고 하는데 피부 관리나 운동은 어떻게 해요.

“관리 안 해요. 귀찮아서. 사촌형이 의사라 새로운 기계 도입했다며 저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는데 아파서 죽을 뻔 했어요. 뭐가 번쩍번쩍 하는 게. 전 시골(경남 창원)출신이라, 그런 거 안 해요. 운동도 헬스클럽은 싫고 축구 농구처럼 공 쫓아다니는 거 좋아해요.”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모공하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깔끔했지만, 말투는 느릿느릿 순박한 시골청년 같았다. 꽃미남 강동원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배우 강동원을 거쳐 시골 청년 강동원으로 끝났다. 그가 사진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모델 강동원이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공지영 원작과 차이점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상류층 여자 유정(이나영)은 수녀인 고모(윤여정)의 손에 이끌려 교화위원으로 교도소에 간다. 거기서 가난하고 불우했던 사형수 윤수(강동원)를 만난다. 삶을 견딜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장편 소설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독자들에게 2시간 남짓으로 제약이 있는 영화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원작을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 낸 것 같다”며 “내가 ‘닭살스럽게’ 써 놓은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바꿨고 소설에 없는 유머도 넣었다”고 말했다.

원작에는 각 장에 ‘블루노트’라는 윤수의 과거가 삽입돼 윤수의 어린 시절이 자세히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거의 생략됐다. 송해성 감독은 시사회에서 “윤수의 과거보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포인트를 뒀다”고 했다.

원작은 사형제도에 대해 반대하지만, 영화는 이런 메시지를 직접 강조하지 않는다. 송 감독은 “한 사람의 최후를 통해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의견 표명을 피했지만 영화 후반부의 분위기로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원작에 없는 사형에 대한 묘사가 영화에서는 상세히 나왔다”며 “한국판 ‘데드맨 워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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