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싸리’가 뭔지도 몰랐어요… ‘타짜’ 조승우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화투장을 손에 쥔 채 영화 속 타짜(노름판에서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 ‘고니’처럼 앉아 있을 것 같았지만 그는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배우 조승우(26)가 느끼하게 말을 건넨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타짜’의 주인공 고니가 보인 카리스마와 깡은 온데간데없다. 그의 본모습은 어떤 걸까. 미리 준비해 간 48장의 화투를 꺼내 보였다. 자, 우리 한판 뜨자.》

# 눈 풀린 타짜와의 한판

“에이, 저 이제 손 털었어요.”

한판 뜨자는 기자의 제안에 그는 일단 뒷걸음질. 그러나 화투 몇 장을 만지작거리더니 비법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고수들은 일단 영역 표시부터 해요. 자신이 갖고 싶은 패를 구부려 평평하지 않게 만들어 알아차릴 수 있게…”라며 손가락 마술을 선보이다 화투장을 떨어뜨린다. “여기 담요가 없어서 그래요”라며 웃는 모습이 능청스럽다.

“무지 고생했어요. 도박은커녕 고스톱도 해본 적이 없어 ‘흑싸리’가 뭔지도 몰랐고 손이 작아서 일반 화투는 손에 맞지도 않았죠. 영화 촬영 3개월 내내 실제 타짜 분께 배웠는데 전 화투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부터 어색했어요.”

그런 그가 도박 영화를 하겠다고 먼저 나섰단다. ‘범죄의 재구성’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의 팬이라는 그는 최 감독이 허영만의 만화 ‘타짜’를 영화화한다는 얘기에 무조건 하겠다고 외쳤다.

“초반엔 ‘조승우, 캐스팅 잘못됐다’는 얘기를 들어서 긴장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허영만 선생님의 ‘내 원작대로 할 거면 영화 만들지 말라’는 말을 듣고 힘을 얻었죠. 만화 대신 시나리오만 붙잡고 천방지축에 깡 넘치는 독보적인 인물만 생각했죠.”

# 조숙한 타짜와의 한판

그는 “영화 ‘타짜’는 도박이 아닌 사람 얘기”라고 했다. 우연히 ‘섰다’ 판에 끼어든 고니는 누나의 이혼 위자료까지 날리며 집을 뛰쳐나온다. 최고의 타짜를 꿈꾸던 어느 날 전설의 타짜 평경장(백윤식)을 만나고 그에게 비법을 전수 받는다. 누나 위자료의 5배만 벌면 도박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도박의 설계사인 정 마담(김혜수)의 팜 파탈(악녀)적인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구강도박’의 달인 고광렬(유해진)과 도박판 속 의리를 다진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가 카리스마 연기를 펼쳤으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과거에 침 좀 뱉었나”라며 고교시절에 ‘놀았는가’에 대해 묻자마자 “침 좀 안.뱉.었.어.요.”라며 딱 잘라 말한다. 마치 기자의 속을 다 꿰뚫고 있는 능구렁이 같았다. 이제 20대 중반인데.

“제가 원래 조숙해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처럼 행동했어요. 집에 남자라곤 저밖에 없어서 스스로 가장이라고 생각했고 돈도 빨리 벌고 싶었죠. 하지만 누가 그러더군요. 모든 남자의 정신연령은 14세라고. 하하.”

인터뷰 말미에 화투장을 정리하면서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며 오랜 시간 꼭꼭 숨겨둔 애인을 공개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내 “부담될 게 없으니 후회될 것도 없다”며 깡 있게 말한다. 마치 ‘3·8광땡’ 패를 손에 쥔 고니처럼.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욕망의 화신’ 정 마담 부각… 만화 ‘타짜’와 차이는

허영만의 7권짜리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타짜’는 2시간 19분짜리 영화로 압축되면서 내용과 구성이 조금 달라졌다.

만화 속 정 마담도 자신의 관능미를 이용해 고급 타짜들을 끌어들이긴 하지만 ‘팜 파탈’의 이미지는 영화 속 배우 김혜수로 인해 극대화된다. 최동훈 감독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정 마담을 부각시켰다”며 “고니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결국 돈 때문에 고니를 버리는 모습에서 보듯 욕망의 화신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만화는 고니와 고광렬이 동행하는 여정으로 구성돼 있다. 1960, 70년대 화폐 개혁으로 어리둥절해하는 도박꾼들의 모습이나 5·16군사정변, 자유당 시절 등의 시대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정 마담의 음모를 바탕으로 여러 인물의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 준다. 최 감독은 “영화로 담기 위해선 긴 여정보다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했다”며 “70여 명의 등장인물을 15명으로 줄였고 처절한 엔딩 대신 미묘한 해피엔딩으로 끝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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