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웃기기 대결… ‘구미호 가족’ vs ‘무도리’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추석 대목’을 노리는 영화계의 전쟁이 시작됐다. 징검다리 연휴까지 합치면 최대 열흘로 휴일이 길고 한국영화 화제작이 몰려 있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구미호 가족

인간이 되고 싶은 구미호 가족이 도시에 나타난다. 소심한 아버지(주현), 항상 수컷 냄새가 그리운 큰딸(박시연), 욱하는 성질의 아들(하정우), 귀엽지만 어쩐지 요상한 분위기의 막내(고주연)까지 다섯 구미호는 서커스장을 열고 간을 빼먹을 인간을 찾는다. 어느 날 우연히 서커스장에 왔다 큰딸과 하룻밤을 보낸 사기꾼 기동(박준규)은 가족의 정체를 알게 된다.

‘구미호 가족’(28일 개봉, 15세 이상)은 꼬리 아홉 달린 전설의 여우, 구미호를 소재로 한 코미디 뮤지컬이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새로운 시도다.

영화는 엽기적이고 황당하다. 서커스에선 잘린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주인공들이 서커스 단원을 모집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에선 갑자기 아파트 철거 현장에 대립하는 시위대와 전경이 댄스배틀을 벌인다. 독특한 설정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생길 듯도 하다.

구미호를 어수룩한 캐릭터로 설정하는 ‘비틀기’가 있고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구미호의 비애나 모집된 서커스 단원들이 보여 주는 소외된 자들의 외침,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 박준규 박시연 커플의 사랑의 힘까지 교훈도 담았다. 너무 많다. 결론적으로 평가가 심하게 엇갈릴 영화다. 다양한 재미를 줄 수도, 도대체 무엇을 봤는지 헷갈릴 수도.

식칼이 주렁주렁 달린 부엌이나 가톨릭의 성모상과 무속신앙의 부적이 공존하는 방 등 음침하고 그로테스크한 세트에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뮤지컬은 어색하진 않으나 폭발력이 부족하고 박준규 박시연 커플은 아무리 봐도 삼촌과 조카 같아서 그 사랑의 안타까움에 몰입하기 쉽지 않다.

■무도리

강원도 산골마을 무도리(無道里). 한 젊은이가 투신자살하면서 ‘자살명당’으로 소문나게 되고 ‘그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도리의 노인 3인방 봉기(박인환) 해구(최주봉) 방연(서희승)은 이들에게 민박을 제공하는 돈벌이를 시작한다. 우연히 무도리에 대해 알게 된 방송작가 미경(서영희)은 특종을 위해 마을로 와 자살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지낸다.

‘생사코믹극’이란 수식어가 붙은 ‘무도리’(21일 개봉, 15세 이상)는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은 코미디다.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 동호회 회원들은 취직이 안 돼서, 배신당해서, 혹은 그냥 혼자인 게 무서워 죽으려 한다. 그러나 이들이 동호회에서 속마음을 터놓고 같이 죽을 사람을 찾는 것은 역설적으로 누군가 함께해 주길 바라는 마음, 삶에 대한 미련을 보여 준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죽기 싫어한다. 특히 혼자 죽기 싫어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당연하다. 다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싱거운 것이 문제다.

실제로는 자살 방조나 교사에 해당될 무도리 3인방의 비인간적 행동은 인간의 본성을 보여 줘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자살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이용해 돈버는 사람들이라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를 관습적으로 엮었다. 마지막 반전은 TV 드라마에서 100만 번쯤 본 우연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론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송대관의 ‘쨍하고 해뜰 날’인데 이 가사가 영화의 주제다. 보고 나면 영화 대사처럼 ‘벽에 ×칠 할 때까지’ 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쨍하고 해뜰 날’이 오나 안 오나 보게 말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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