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만행 앞에 형제는 뭉쳤다…‘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입력 2006년 11월 2일 02시 57분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독립투쟁 시기를 배경으로 동지에서 적으로 변하는 형제의 운명을 그려 냈다. 사진 제공 동숭아트센터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독립투쟁 시기를 배경으로 동지에서 적으로 변하는 형제의 운명을 그려 냈다. 사진 제공 동숭아트센터
1920년대 아일랜드, 런던의 병원으로 가려던 의사 데미언(킬리언 머피)은 영국군의 만행을 목격한 뒤 런던행을 포기하고 형 테디(패드레이크 딜레이니)와 함께 아일랜드 독립투쟁에 나선다. 잡히고 고문당하고 동료들이 처형당하는 일이 이어지고,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제외하고 자치권을 준다는 타협안을 내놓는다. 온건파인 형은 협정을 받아들이지만 과격파인 동생은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다. 2일 개봉하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건축 노동자, 실직자 등 사회 소외 계층의 삶에 주목해 온 세계적인 거장 켄 로치의 신작이다.

익히 알려진 그의 스타일대로 영화는 투박하다. 의도적으로 멋지게 보이려는 구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평론가와 언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재미’ 있는 영화는 아니다. 평범한 청년이 역사의 영웅으로 변하는 것, 형제 간의 갈등을 드라마적 요소로 넣은 것 역시 자주 본 설정이다. 그러나 감독은 ‘어떻게’보다 ‘무엇’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꼬마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년을 밀고자라는 이유로 처형하게 된 데미언은 “조국이라는 게,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라고 말한다. 같이 조국을 위해 싸우던 형제는 신념의 차이로 적이 되고 “넌 이상주의자” “형은 대영제국의 하인”이라며 공격한다. 형제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잉태한다. 신념이라는 게,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걸까? 감독의 대답은 명확하다. 게릴라군의 손톱을 뽑고 어머니 앞에서 아들을 때려죽이는 영국 제국주의의 만행과 고통 받는 아일랜드인의 얘기를 영화로 만든 켄 로치는 영국인이다. 이 또한 그의 신념일 게다. 2006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15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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