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에서는 일찍부터 내년 대선 정국을 앞둔 여권의 의지 때문에 ‘코드 방송’을 해 온 정 씨가 연임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유재천 ‘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한림대 특임교수)는 “정 씨의 연임은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공영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결렬 등 그동안의 논란은 ‘정 사장 만들기’를 위한 각본이었으며 이사회가 거수기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11명의 KBS 이사 중 3명이 사장 임명 제청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퇴 의사를 밝혔고 KBS 노조도 출근 저지 투쟁과 이사회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벌이겠다고 밝혀 “KBS 논란은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공모제, 그러나 끊임없는 연임 음모설=KBS 이사회는 9월 11일 사장 선임에 공모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정 씨 연임을 위한 뻔한 공모(共謀)제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KBS 이사회의 절대 다수가 여권 추천 인물로 구성돼 이사회가 직접 사장을 선출하면 정 씨 연임을 위한 거수기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 이사회는 이 같은 지적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사추위를 구성하기로 했으나 공정성을 위해 평가 기준을 명시한 뒤 후보의 점수를 공개하자는 노조의 제안을 거부했다. 정 씨가 낮은 점수를 받아 사장 후보에서 제외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노조는 주장했다.
또 노조는 사장 후보에 13명이 응모한 점을 감안해 사추위의 권한을 보장하려면 3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사회는 5명을 고집했다. 실제로 9일 면접 심사장에 나타난 후보자 13명 중 8명은 사장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던 인사들인 것으로 드러나 이사회의 5명 추천 주장은 정 씨가 후보에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사회는 자신이 추천한 이권영(한국방송학회장) 사추위원이 회의에 한 차례 불참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촉한 데 이어 7일 사추위를 무산시킨 뒤 사장 후보 선출을 강행했다.
사추위원으로 참여했던 방석호 KBS 이사는 “이 위원이 정 씨의 연임을 지지할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자 해촉한 것”이라며 “이사회는 정 씨의 연임을 방해할 만한 제안을 모두 거부했고 사추위로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자 깨버렸다”고 말했다.
▽정 씨 취임 이후에 더 큰 논란=노조가 4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4050명의 응답자(전체 직원 5760명) 중 82.4%가 정 씨의 연임에 반대할 정도로 정 씨는 신뢰를 잃었다. 정 씨가 경영 능력이나 공영 방송 리더의 자질을 보여 주지 못한 데다 끊임없이 편파 방송 논란을 초래했다는 게 그 이유다.
게다가 이날 이사 3명이 사퇴함으로써 KBS의 최고 의결 기구인 이사회의 파행 운영이 불가피해 디지털 전환 등 경영 정책의 수립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정치권의 파장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민과 함께 정연주 사장 임명에 반대한다’는 논평을 내고 “야당은 물론 KBS 사원과 국민이 반대하는 정 씨를 고집하는 것은 KBS를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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