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보다 '박하사탕' '초록물고기'같은 인간적인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그렇다고 그런 영화에만 출연하는 게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자아에 관심이 많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멋있는 영화만 출연한다'란 비판을 받지만 전 제게 맞는 옷을 입는다 생각해요."(정우성)
"'기계같다' '인간미없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 정말 버거워요. 사실 전 엉뚱하거든요. 제 모습은 '싸이언' TV CF나 '중천'의 여주인공 '소화'가 딱 제 모습인 것 같아요. 천진난만하고 세상물정 모른다고 할까?"(김태희)
미남, 미녀 배우가 이런 말을 하니 설득력 없게 들린다. 그렇다면 이성으로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판타지'는 어떨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태희는 손사래부터 친다.
"아무리 멋있어도 '당연히 인간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빠를 대했어요. 중국에서 같은 호텔에 묵고 밥도 같이 먹고 자다가 서로 부스스 일어난 모습도 보고…. 그런데 생각보다 자상해요. '미리 계산하지 말고 연기하라'며 연기 지도도 해주고."(김)
"태희는 귀여운 동생같아요. 승부욕도 있는 것 같고. 저 역시 여배우와 해외에 오래 나간 적은 처음인데 태희 씨가 첫 주연이라 많이 떨더라고요. 그래서 편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쉴 때는 같이 탁구도 치러 갔죠."(정)
중천은 죽은 영혼들이 환생을 기다리며 49일간 머무는 곳. 이 곳을 지키는 천인(天人) 소화(김태희)와 무사 이곽(정우성)의 사랑을 다룬 '중천'은 100여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고 모두 중국에서 촬영됐다. 스케일이 크다보니 두 배우도 겁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특히 첫 주연이라는 김태희의 심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듯 하다.
"승부욕이 강한 편인데도 신기한 것은 지금까지 '이것 아니면 죽음'이라는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구하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갈수록 연기에 대한 매력을 많이 느껴요.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없애려고 독기를 품기보다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입니다."(김)
정우성도 초조한 듯 했다. '비트'나 '태양은 없다', '똥개' 등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피 끓는 청춘이었지만 '내 머릿속의 지우개' '새드 무비' '데이지' 등 최근작에서 그는 수채화 같은 멜로물의 주연 배우로 마음먹고 나선 듯 하다.
"아휴~. 저도 30대여서 나이에 맞게 연기해야죠. 요즘 키 크고 잘 생긴 후배가 많이 등장하지만 저언~혀 신경 쓰지 않아요. 잘 생긴 후배들이 많다고 '난 이제 그만 잘 생길래'라고 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태양은 없다' 때도 (이)정재랑 친했는데 다들 라이벌 구도로 세우는 게 이상했어요. 앞으로 더 여유로워지고 싶어요."(정)
두 배우는 "긍정적으로 살아 열등감이나 비애같은 거 잘 모른다"며 웃는다. 진심일까? 최근 스캔들로 곤욕을 치룬 김태희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러자 그녀, "중국에 있다 가끔 한국 와서 그런 소리 들으면 '아 몰라, 나 다시 중국 갈래' 그러면서 잊는다"며 웃었다.
"어렸을 적 쫄바지 입고 남자 애들 코피 터트리고 다닌 게 저에요. 하지만 열등감은 많았어요. 남자 애들한테 인기 많았던 유치원 친구를 이기고 싶어 집에 오는 것도 늘 뛰어왔죠. 걔 이기려고요."
그러자 정우성, "너 유치원 때부터 열등감 느꼈어? 대단하다"라며 웃었다. 어느새 '중천'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이들, 자리를 떠날 채비를 하며 기자에게 '판타지'같은 한 마디를 건넸다.
"촬영 내내 '중천'에 있다보니 이승이 좋아졌어요. 영화는 잘 돼야 겠지만 돌이 되더라도 이승에 있는 게 나은 것 같아요."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