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개봉하는 ‘로맨틱 홀리데이’의 마지막에 그레이엄(주드 로)이 아만다(캐머런 디아즈)에게 하는 고백이다. 진부하지만 주드 로가 눈물을 글썽이는데, 어떤 여자가 거부할까. 7일 개봉하는 ‘미스터 로빈 꼬시기’에서 로빈(다니엘 헤니)은 민준(엄정화)에게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한다. 사랑의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의 계절이다. 20, 30대 여성을 위한 ‘기획 상품’인 로맨틱 코미디는 공식대로 간다. ‘로맨틱 홀리데이’(이하 ‘홀리데이’)와 ‘미스터 로빈 꼬시기’(이하 ‘로빈’), ‘저스트 프렌드’(7일 개봉, 이하 ‘프렌드’)를 공식에 맞춰 6가지 키워드로 해부했다. 연말인데, 좀 뻔하면 어떤가.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행복’이 있는 걸. 》
Pretty(귀여운) - 귀엽게 망가지는 여자
여주인공은 아름답기(beautiful)보다는 예쁘게 귀여운(pretty) 쪽에 가깝다. ‘로빈’의 민준은 잘나가는 애널리스트지만 단란주점에서는 막춤을 추고 술주정을 부리는 엉뚱한 구석이 있다. ‘홀리데이’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즐릿)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르네 젤위거처럼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작년에 흥행한 ‘작업의 정석’의 한지원(손예진)은 트로트를 틀어 놓고 혼자 춤을 추는 ‘푼수 끼’로 히트를 쳤다. 시나리오를 썼던 신정구 작가는 “완벽한 여주인공은 여성 관객이 싫어하고, 여성들은 ‘엉뚱한 짓도 귀엽게 봐 주는 남자’를 원한다”고 말했다.
Professional(프로) - 돈 많고 ‘싸가지’ 없는 남자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박신양)가 전형적이다. 돈 많고 능력 있지만 여자에게 정을 주지 않는 ‘냉정한 프로’의 이미지.
‘로빈’의 로빈도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에 5개국어를 하는 최고경영자로 도도한 캐릭터. ‘프렌드’의 크리스(라이언 레이놀즈)는 고향을 떠나 음반기획자로 성공하지만 바람둥이가 된다.
성별만 바꿔, 성공했지만 사랑을 모르는 외로운 여자도 자주 등장한다. ‘홀리데이’의 아만다는 성공한 사업가지만 남자가 떠나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만큼 메말랐다. 이 경우 대신 남자가 따뜻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Past(과거) - 누구나 한두 번은 실패
주인공들에겐 아픈 과거가 있다.
‘로빈’의 민준처럼 사랑에 목숨걸다 매번 차이거나 로빈처럼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랑에 냉담하거나. ‘홀리데이’의 아만다는 옛 남자들이 준 상처에 매여 아예 “난 사랑을 할 줄 모른다”고 말하고 아이리스는 짝사랑만 한다.
한국에서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 흥행 코드로 완전히 굳어졌다. 주인공은 가벼운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슴 깊이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갑자기 진지해진다.
누구나 한두 번은 사랑에 실패한다는 점에서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한 장치.
Problem(문제) - 방해받아 엇갈리는 그들
방해 세력이 문제를 일으켜 남녀는 계속 엇갈리고 오해한다.
‘프렌드’에서 크리스는 남자만 보면 개가 뼈다귀 핥듯 핥아대는 가수 사만다와 함께 고향에 가게 된다. 예전에 짝사랑했던 제이미(에이미 스마트)와 잘해 보려 하는데 사만다가 계속 달라붙고 옛 고향 친구는 멋지게 변신해 제이미를 유혹한다. 이들 때문에 주인공들은 위기를 맞는다.
특히 예전에 주인공에게 상처를 줬던 남녀는 꼭 잘될 만하면 돌아와 잘못했다고 한다. ‘홀리데이’에서 아이리스를 울린 남자는 아쉬우면 찾아온다. “자긴 내 구급상자야.”
Proverb(격언) - 그럴듯한 인생 격언 등장
사랑과 인생에 관한 그럴듯한 격언이 쏟아진다. 인터넷에 ‘어록’이 만들어질 만한 교훈적이면서 공감가는 대사는 필수.
‘홀리데이’에서 로스앤젤레스에 간 아이리스에게 이웃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에는 주인공이 있고 조연이 있지만 인생에는 항상 네가 주인공”이라고 얘기하고 이에 아이리스는 자신감을 회복한다.
로빈은 “사랑은 감정을 갖고 노는 권력 게임”이라는 등 제법 달관한 체하고 민준 역시 “이별한 여자에게 필요한 건, 함께 울어줄 친구지 비평가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Propose(프러포즈) - 아름다운 프러포즈로 결말
“너와 함께 아기를 갖고 싶고, 결혼하고 싶어…. 사랑하니까. 늘 너만 사랑했어.”(‘프렌드’ 중) 로맨틱 코미디의 결말은 결코 관객을 배반하지 않는다. 느닷없는 아름다운 프러포즈, 한바탕 눈물을 쏟으며 그동안의 모든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되고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판타지는 한껏 자극된다.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도 경험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결말 공식. 주인공 혼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렵게 고백하고 보면 상대방도 원래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다. 다 아는데, 주인공만 몰랐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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