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고가 난 뒤 두 달이 지나도록 KBS는 후속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11일 기술과 송출을 담당하는 기술본부장을 유임시켰고, 당시 사장 직무대행을 한 부사장도 1일 재임명했다. KBS 인사팀은 “징계 절차를 밟고 있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달 6일에는 KBS 광주방송총국 여직원이 4년 10개월간 가짜 영수증으로 9억여 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 터졌다. 수신료가 가구당 월 2500원이니 36만 가구가 낸 한 달치 수신료보다 많은 돈을 삼킨 셈이다. KBS는 메인뉴스에서도 관련 뉴스를 내보내지 않았다. 광주방송총국 홈페이지에 이틀간 사과문을 띄웠으니 본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KBS의 침묵은 일본 공영방송 NHK의 경우와 대조된다. NHK는 올 4월 PD가 5년간 출장 서류를 위조해 1760만 엔(약 1억4700만 원)을 횡령했다고 밝힌 뒤 여러 차례 사과했다. NHK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시청자께 면목이 없다”며 진행자를 비롯해 해당 PD와 무관한 스태프도 고개를 숙였다. ‘출장 횡령 수법’을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NHK가 시청자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시청료 납부 거부’를 통해 공영방송의 도덕적 해이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NHK 수신료는 징수원이 가구별로 받아 가지만, KBS는 전기요금과 통합해 받기 때문에 강제 징수나 다름없다.
5월 29일 KBS 노보에 따르면 정연주 사장은 2004년 17대 총선 전 간부회의에서 “선거를 잘 치르고 수신료 인상 목표를 달성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보다 정치적 변수를 더 비중 있게 내세운 것이다. 정 사장은 지난달 27일 연임 후 취임 일성으로 ‘재원의 공영화’라며 수신료 인상 추진 의사를 거듭 강조했다.
수신료 인상은 KBS의 오랜 과제이지만 방만 경영과 편향 보도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잇따른 사건 사고에 명쾌한 조치를 외면한다면 앞으로도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할 것 같다.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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