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장애인인 상은이는 의경인 종범(정경호)과 사랑을 하고 암에 걸린 엄마(배종옥)와 이별을 하며 성장한다. 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허브처럼 세상에 향기를 뿜는 순수한 영화다. 그는 일곱 살 같은 행동에서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발음이 새는 듯한 영화 속 목소리를 듣고 처음엔 ‘강혜정이 치아 교정 때문에 목소리가 변했나’ 하는 착각을 했다.
“그 목소리 내는 기술이 있어요. 이렇게, 혀를 아랫니 뒤에 붙이고 말하면 돼요.”
그가 시범을 보이는 바람에 따라해 봤다. 상은이는 동화 속 주인공들과 얘기하고 고민을 털어놓는데, 그때 나오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모든 캐릭터를 그가 연기하고 목소리도 모두 다르게 냈다.
또래 여배우 중 그는 특별하다. 주로 ‘센 역할’만 맡아 왔고 연기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전 되게 ‘노멀(normal)’한 사람인데. 없는 걸 찾아가려니까 그런가?”
이번에도 그는 역할에 무섭게 몰입했다. 영화에서 사랑의 아픔을 알게 된 상은이가 밥을 미친 듯이 먹으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어떡해…(가슴을 꽉 쥐며) 여기가 텅 빈 것 같아 먹어도 채워지지가 않아…” 할 때의 표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몰입하고 나서 빠져나오긴 힘들지 않을까.
“상은이랑 헤어지고 나서 잠을 진짜 많이 잤어요. 아리(도마뱀) 여일(웰컴 투 동막골) 홍(연애의 목적)과 헤어질 때도. 곰이 겨울잠 자듯 16시간씩 자면서도 찍었던 장면들이 막 떠올라요. 그러면서 차츰 잊어가죠.”
1982년생, 스물네 살이다. 영화에선 아역 배우처럼 어려 보였는데 이날은 성숙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도마뱀’ 끝나고 얼굴이 파일 정도로 말랐어요. 촬영 시작 하니까 살이 쪄서 어려 보인 거예요. 전 일을 해야 살이 찌거든요.”
올해 내내 구설수에 시달려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았다. 그의 연애 상황, 급속 치아 교정으로 달라진 얼굴에 대해 많은 말이 나돌았다.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근데 나를 구원해 준 생각은, 만약 마흔이 넘어 자서전을 쓴다면 지금의 나이는 두세 쪽 분량도 안 된다는 것. 그러니 뭐든지 너무 아파할 필요 없죠. 교정은 건강을 위해 선택한 일이니 후회하지 않아요. 오래 살고 볼 일이잖아요?”
영화에서 상은이는 말한다. “공주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자기가 열심히 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동화일 수밖에 없는 거래요. 사람은 스스로 씩씩하게 살 때가 제일 멋진 거라고 했어요. 우리 엄마가….”
이는 강혜정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확실히 ‘공주과’는 아니다.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간다. “여자는 누구나 공주 대접 받고 싶어 하지만 어느 방면이든, 능력이 없으면 매력이 없는 것 같다”며 웃는 그는, 연기로만 평가받아도 충분하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