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의 유혹… TV 지나친 희귀 사연 집착… 허위 과장에 노출

  • 입력 2007년 1월 18일 03시 00분


“사전검증 시스템 절실”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부부. 평소에도 각별했던 시어머니와 남편의 사이가 점점 더 가까워져 가고 아내는 모자 사이에서 자리를 잃어 간다. 충격적인 사실은 남편이 시어머니의 친아들이 아니었다는 것. 아내는 모자 사이가 마치 불륜처럼 느껴진다.

MBC 오전 프로그램 ‘이재용 임예진의 기분 좋은 날’은 지난해 12월 14일 실제 사례라며 이를 재연해 방영했다. 진짜 이런 일이 있을까도 싶지만 이런 사례를 어떻게 구했을까도 궁금하다. 주부 시청자를 대상으로 매일 오전에 방영하는 KBS1 ‘아침마당’, MBC ‘생방송 오늘 아침’, SBS ‘모닝 와이드’ 등은 가정사에 얽힌 실제 사례들을 내보낸다. 사례를 재연하거나, 사례의 주인공들이 출연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직접 사연을 밝히는 형식이다.

10년간 아기가 없는 형의 부부에게 정자를 제공한 남편을 둔 주부, 뚱뚱한 남편이 싫어 잠자리를 거부하는 주부, 맞고 사는 아내와 때리는 남편 등 생활 속에서 접하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시청자들은 이런 사연에 공감도 하지만 의문을 품기도 한다. 50대 후반의 주부 김영숙(서울 은평구) 씨는 “어디서 저런 사례를 구했는지, 정말 드러내기 어려운 처지를 어떻게 TV에 버젓이 공개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사례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제작진도 인정한다. 주부 대상의 시사정보 프로그램 SBS ‘김미화의 U’를 맡았던 한 작가는 “신문 사회면에 게재된 특이한 가정 사례를 챙기거나 경찰서에 연락해 인물을 찾는다”며 “청소년 주부 가정폭력 상담단체와 정신과 병원 등에 연락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사례를 찾더라도 출연 섭외는 더 어렵다. 한 외주제작사 PD는 “대부분 출연을 거부하기 때문에 주변인을 만나 설득하고 집 앞에서 종일 기다리기도 한다”며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변조를 한다고 설득하는데도 무척 오래 걸리며 방송 후 출연료 등 보상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각광받는 섭외처는 주부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카페. 제작진은 이 카페에 가입해 섭외를 요청하고 주부들의 고민이 담긴 글도 뒤진다. ‘신혼이혼’ 등 특정 사례를 찾는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 주부들의 댓글이 붙는다. 포털사이트에 이런 카페만 수십 개다.

섭외의 어려움은 ‘겹치기 출연’이라는 문제를 빚는다. 자주 섭외를 받는 주부들이 이곳저곳에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카페 회원은 “제작진이 급할 경우 카페에서 알게 된 주부에게 요청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례를 과장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특히 시청자 출연 프로그램이 급증하면서 시간에 쫓겨 사례를 구하는 제작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시청자 사례를 내보내는 프로그램들이 자칫하면 일부 출연자의 ‘사기극’에 이용될 수 있으므로 사전 점검 시스템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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