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유괴범은 범행 다음 날 아이의 집에 전화해 “다 보고 있어요. 당신들 일거수일투족. 경찰에 신고했죠?” 하면서 (이미 신고한) 가족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형사=그게 놈들이 쓰는 수법입니다. 첫날엔 “경찰에 신고하면 아이가 죽는다”고 협박했다가 다음번 전화에선 다짜고짜 “신고한 거 다 안다”고 단정적으로 소리칩니다. 가족의 반응을 떠보는 겁니다. 당황해선 안 됩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신고하면 아이가 죽는데 어떻게 신고할 수 있느냐”고 주저 없이 대답해 범인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기자=영화에선 가족이 범인과의 전화 통화 시간을 최대한 끌어줄 것을 경찰이 요구합니다.
▽형사=전화 발신지를 추적한 뒤 해당 전화기가 있는 곳까지 경찰이 당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범인의 목적은 주로 돈이기 때문에 돈 얘기를 꺼내면 범인의 경계심을 다소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지금 사채로 돈을 마련하려 하는데 돈이 될 때까지 하루가 더 걸린다.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식으로 자신이 돈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해 주면 범인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기자=안타깝게도 아이는 유괴 하루 뒤 숨집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상당 기간 피 말리는 노력을 합니다. 아이의 생존 여부를 부모가 가늠할 방법은 없나요?
▽형사=일단 범인에게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범인이 “아이가 다른 곳에 있어 지금 목소리를 들려 줄 수 없다”고 할 경우엔 다른 방법을 써야죠. 아이의 생일 혹은 담임교사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처럼 아이와 부모만이 알고 있는 사항을 범인에게 물으면서 “아이에게 물은 뒤 다음 전화 통화 때 답을 알려 달라”는 식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기자=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모르는 어른을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미리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괴범이 완력을 쓰는 경우는 아이로서도 불가항력적이죠.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부모가 아이에게 사전에 주지시킬 사항은 없을까요?
▽형사=유괴범이 면식범일 경우엔 아이를 처음부터 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를 돌려보내도 어차피 자기 신분이 노출되기 때문이죠. 면식범이 아닐 때는 아이의 행동이 자신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범인 자신이 노출될 가능성이 줄어들면 그만큼 아이가 목숨을 보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가 징징대고 계속 울거나 아이가 범인의 얼굴을 명확하게 알게 된 경우는 위험합니다. 범인이 살해 의도가 없었더라도 아이의 목숨을 빼앗을 공산이 그만큼 크죠. 그러므로 아이에게 △격리된 공간에 유괴범과 단둘이 있을 때는 울음을 참고 고분고분할 것 △고개를 숙이고 범인의 얼굴을 가급적 보지 않을 것을 미리 숙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면 당연히 소리쳐 도움을 요청해야 하겠지만요.
▽기자=영화 속 범인을 어떻게 보십니까?
▽형사=범행 후 44일간 총 87회에 걸쳐 가족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보아 사전 준비가 치밀한 녀석입니다. 그만큼 안 잡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니까요. △감정 기복이 없는 점 △존댓말을 계속 사용하는 점 △“돈만 회수되면 아이는 바로 도킹(‘만나게 하다’란 뜻)시켜 드립니다”라는 말을 반복해 쓰면서 ‘도킹’이란 독특한 단어로 부모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드는 점 등으로 보아 냉정하고 잔인하고 지능이 뛰어난 놈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사건은 우리 경찰에 의해 반드시 해결됩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지만, 우리 경찰은 범인이 탄 차량이 지나간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모조리 회수해 지문 조사까지 합니다. 결국 놈들을 잡아냅니다. 반드시 잡아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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