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넘버 23’(22일 개봉)은 숫자 23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남자 월터(짐 캐리)의 이야기. 아내에게서 ‘넘버 23’이라는 소설책을 선물받은 그는 23의 저주로 살인을 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신도 23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게 된다.
왜 23일까. 9·11테러 사건 발생일은 2001년 9월 11일(2+1+9+11)이고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시간은 오전 8시 15분(8+15), 인간의 체세포는 23쌍이며 지구 자전축은 23.5도(2+3=5) 기울어져 있고 마야 문명은 2012년 12월 23일을 종말로 예견했고…. 뭐 그렇단다.
이 같은 전개는 숫자에 담긴 신비한, 숨겨진 힘을 연구하는 수비학(數秘學·numerology)에 바탕을 두고 있다. 7을 행운, 4를 죽음의 숫자로 여기는 것도 수비학에서 파생된 현상.
생활 속에선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숫자로 바꾸어 해석하는 일이 가장 흔하다. 그러나 알파벳에 숫자를 대응시키는 방법은 제각각이며 많은 수비학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를 조작했다고 한다. 과학역사가인 I B 코언의 ‘세계를 삼킨 숫자 이야기’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였던 17세기 수비학자 페트루스 분구스는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이름을 자신의 체계에 따라 짐승의 수인 666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영어식으로 풀어 보니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왔고, 결국 분구스는 루터의 성만 라틴어로 표기하는 편법을 썼단다.
영화에서도 그렇다. 생일같이 중요한 숫자는 그렇다 쳐도, 주인공은 집에 칠한 페인트 번호나 현관의 신발 수까지 23에 끼워 맞춘다. 이런 식으로 하면 21도, 24도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 결과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다.
하나의 수가 한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것일까. 차라리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좋겠다. 수비학은 다 사기란 뜻이 아니다. 이는 동양의 주역과 비슷하다. 천문학과 점성술의 관계처럼 수학은 분명하지만 수비학은 ‘믿거나 말거나’다. 사실 이 영화의 무게중심은 수비학에 의한 운명론이 아니라 인간의 강박증에 있다.
사람들은 아무 연관성이 없는 일들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이렇게 원인을 알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이를 두고 “내면의 불안에 대한 방어”라고 말했다. 원인도 해결책도 보통은 다 자기 안에 있지만 그걸 깨닫지 못해 불안을 감추려고 집착할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인생이 ‘무엇무엇’ 때문에 망가졌다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 하고 집착은 계속 강해진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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