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6년 만에 5집 ‘더 윈도스 오브 마이 솔’을 발표하는 가수 양파(사진). 이젠 군인 ‘아저씨’들마저도 그녀의 눈에는 피부 탱탱한 ‘애들’로 보일 정도로 세상이 낯설단다. 1997년 고교생 가수로 데뷔해 ‘애송이의 사랑’으로 각종 신인상을 휩쓸던 그녀는 어느덧 성숙한 여인이 돼 있었다. 그 성장의 원동력은 바로 좌절이었다. 2001년 4집까지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이후 전 소속사로부터 계약 관련 소송을 당해 6년간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음악 활동도,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의 유학 생활도 그동안 모두 정지 상태였다.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도 많이 마셨고 밤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수면제를 먹고 자기도 했죠. 하지만 대중가수였던 제게는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기도 했어요. ‘홍대 앞 클럽’에서 인디 밴드들과 어울렸고, 또 뮤지컬도 보러 다니고….”
공백기 극복이 쉽진 않았다. 쉬는 동안 여가수들은 더욱 섹시하게 변했고 발라드 역시 미디엄템포가 대세가 되는 등 그녀는 어느덧 ‘옛날 가수’가 돼 버렸다. 그녀는 섭섭함을 돌려 말하는 듯 “10대들이 양파를 모르는 건 괜찮은데 나보다 윗세대 선배님들과 같은 급인 양 ‘오래된 가수’ 취급받는 것은 슬프다”고 외친다.
‘양파의 어른 되기’라고 자평하는 5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목소리’에 있다. 타이틀곡 ‘사랑…그게 뭔데’를 비롯한 발라드곡이 대부분이지만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단점을 목소리로 커버했다. 과거 ‘내지르기’가 그녀의 목표였다면 지금은 한 서린 비장미가 가득하다. 반면 빅밴드풍의 재즈곡 ‘매리 미(Marry Me)’나 3박자 왈츠곡 ‘친절하네요’ 등의 실험성 강한 자작곡에선 버클리 음대의 내공이 느껴진다.
데뷔 후 4년간 활동하다 6년을 쉬었으니 삶에 대한 후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야 했는데,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았어야 했는데…. 여전히 ‘애송이’ 양파는 불안하다.
“가수 데뷔 전 꿈꿨던 ‘연세대 정외과’에 진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혹시 10년 전 ‘복통’으로 수능을 포기한 일을 말하는 건 아닐까? 그녀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땐 솔직히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라며 웃는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뿐. “그 당시 친구들 만나면 만날 박봉과 야근에 시달린다며 하소연해요. 아휴, 지금 제 모습이 나은 것 같아요”라며 결론을 짓는다.
근심 어린 표정을 짓던 그녀는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다시 활짝 웃는다. ‘서울대 법대 진학’ ‘은행원과의 결혼’ 등의 철칙을 내세웠던 아버지는 이제 그녀의 기사를 제일 먼저 챙기고, 어머니는 “실험적인 음악 좀 해봐”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이런 부모님을 위해 그녀가 준비한 것은 무엇일까?
“앨범 대박, 살 안 찌는 것, 라이브 잘하는 것 정도? 아 맞다, 결혼도요. 진짜 하고 싶어요. 으흐흐….” 그녀는 그렇게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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