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가수들의 ‘컴백’은 중요한 마케팅 수단”
요즘 가요계 핵심 코드는 ‘90’이다. 작년부터 거세게 일던 ‘7080’ 물결에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1990년대 한국의 음반 시장을 주도하던 실력파 가수들이 대거 컴백했다. ‘7080’ 세대의 부활에 이어 이들도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중 곁으로 되돌아온 가수들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재기, 향후 활동, 영향 등을 2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
양파·진주·김원준·R.ef 등 90년대 실력파 가수 컴백 러시
김건모, 양파, 진주, 김원준, 심신, 김혜림, R.ef…. 이들은 1990년대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왕년의 인기 가수들이다. 이들이 긴 침묵을 깨고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김건모는 지난 95년 단 한 장의 음반으로 2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기념비적인 가수다. 그가 최근 11집 ‘스타일 앨범 11(Style Album 11)’을 들고 옛 명성을 되찾겠다고 나섰다. 그의 이번 앨범은 ‘디지털 시대에 바치는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과 고백’을 표방하고 있다. 타이틀곡 ‘허수아비’는 지금까지 선보인 음악 중 가장 회화적인 발라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건모의 노래 ‘잘못된 만남’은 1970~9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97년 데뷔 후 ‘애송이의 사랑’ ‘알고싶어요’ ‘애비불비’ 등 애잔한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고교생 가수 양파도 6년 만에 새 음반을 냈다. 양파는 가창력과 대중성을 두루 겸비한 90년대 최고의 알엔비 가수로 평가받는 인물. 데뷔 당시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힌 그의 포부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통하는 듯하다. 컴백 앨범 ‘더 윈도우 오브 마이 소울(The Windows Of My Soul)’이 가요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터차트, M.net 등 온·오프라인 가요 프로그램에서 수위를 달리며 단 기간에 음반 판매 1만장을 돌파했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진주도 6년 만에 대중 앞에 섰다. 진주는 소속사 간 분쟁으로 활동을 중단한 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컴백 후 가진 특별공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정말 죽고 싶었다”고 고백했을 정도. 당시 자포자기 심정으로 쓴 유서를 가사로 옮긴 타이틀곡 ‘라이프 고즈 온(Life gose on)’에는 그러한 진주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현우는 10집 ‘하트 블로섬(Heart Blossom)’으로 재기했다. 타이틀곡 ‘거짓말처럼 기적처럼’을 비롯해 ‘그래서 말인데’, ‘개화’ 등 이번 앨범에 수록된 9곡은 모두 직접 작사·작곡 했다. ‘사랑’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이현우는 이번 앨범에 대해 “나이를 먹으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알게 됐다. 평소 자주 쓰는 단어를 넣으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달팽이’로 유명한 이적은 3집 ‘나무로 만든 노래’로 컴백했다. 타이틀곡 ‘다행이다’는 청혼가를 연상시키는 감미로운 곡이다. ‘오직 하나뿐인 그대’로 당시 가요계에 선풍을 일으키며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심신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새로운 앨범을 선보인다. 경쾌한 댄스곡인 ‘DDD’를 비롯해 ‘이젠 떠나가 볼까’ ‘날 위한 이별’ 등 여러 히트곡을 쏟아냈던 박혜림도 7년 만에 무대에 선다.
이외 ‘선생님 사랑해요’ ‘오락실’의 한스밴드, ‘노노노노노노’의 하수빈, ‘보라빛 향기’의 강수지, ‘어떤가요’의 이정봉, ‘모두 잠든 후에’의 김원준, ‘널 보낸 후에’의 최재훈, ‘포플러 나무아래’의 이예린, ‘유혹’의 이재영,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의 이지연, ‘고요속의 외침’의 그룹 R.ef 등 수많은 가수들이 대중 곁으로 돌아온다. 더욱이 90년대 가요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서태지도 새 음반을 발매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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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7080에서 90으로 중심축 이동”
이런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음악적 감성이 풍부했던 90년대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 결과다. 또한 이제는 90년대도 복고의 대상이 됐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요평론가 임진모 씨는 “기본적으로 ‘7080’ 노선과 같다”고 전제한 뒤 “작년부터 7080 바람이 일더니 이제는 무게중심이 ‘90’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90년대도 그리움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성세대는 90년대 가요의 리메이크에 대해 ‘템포가 너무 빨라지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 음악 수요자들인 10대에게는 90년대마저도 굉장히 먼 옛날이 됐다”며 “‘틴 마켓’ 측면에서 봤을 때 90년대도 충분히 복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원여대 대중음악과 이홍래 교수는 리메이크 활성화에 따른 원조 가수에 대한 그리움 자극, 가요 시장의 변화 필요성 등으로 풀이했다.
이 교수는 “예전에는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는데 언젠가부터 알엔비가 강세를 이루면서 가요계가 획일화돼버렸다”며 “이때부터 가요 시장의 활성화 수단으로 80~90년대 노래들이 ‘리메이크’ 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리지널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알엔비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돼 왔고, 여성 가수의 경우 너도나도 섹시 컨셉트를 내세웠다. 수요자들이 식상해할 것”이라며 “지금은 가요시장에 변화가 필요한 시기로 90년대 가수들의 컴백은 그런 시대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이들은 또한 90년대 가수들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심금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정체된 가요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 씨는 “양파의 성공을 볼 때 옛날 가수들의 ‘컴백’이 중요한 마케팅 수단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았던 가수들이 다시 대중 앞에 서는 것은 그들을 알고 있는 기존 수요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고, 새로운 수요자에게는 윗세대들로부터 대물림되는 전설이 가미돼 색다른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도 “90년대 가수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10대들에게는 신인가수의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갈 것”이라며 “이승철 씨가 재기에 성공했을 때 젊은 층은 그를 신인가수로 알았다. 10대들은 90년대 가수들을 ‘한물 간 가수’라기보다는 새로운 가수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성을 중심으로 한 아날로그적인 면 살려야…성공”
그렇다면 90년대 가수들이 재기에 성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요즘 가요계의 흐름과는 거리를 둔 ‘차별화 전략’을 첫째로 꼽았다.
임 씨는 “수요자들에게 오늘의 가요시장과는 다른 콘텐츠를 전해줘야 한다”며 “지금의 콘텐츠는 창조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예술성이 높은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도 “지금의 시류에 절대 편승해서는 안 된다”며 “라이브를 앞세운 공연 위주의 활동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요즘의 젊은 가수들이 내세우는 춤이나 디지털·전략화 된 테크닉보다는 감성을 중심으로 한 아날로그적인 면을 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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