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영화의 내용을 놓고 볼 때 요즘 브라운관을 점령한 수많은 불륜드라마와 어떤 차별성을 지닐까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앤드루(데이비드 매키니스)의 부인 소피(베라 파미가)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 기도까지 한 남편을 잃지 않기 위해 절박한 도박에 나선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남편 몰래 한국인 불법체류자 지하(하정우)를 회당 300달러씩 주는 ‘씨내리’로 삼아 아이 갖기를 시도한 것. 그러나 차가운 육체적 거래는 점차 뜨거운 관계로 발전하고 결국 임신에 성공한 소피는 남편과 지하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영화는 ‘돈으로 거래되는 성’, 빈부 격차, 동양 남자들 사이의 백인 여성이라는 민감한 소재들을 심어놓은 지뢰밭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감독은 그런 선정성의 복마전 속을 헤쳐갈 수 있는 윤리적 나침반을 ‘몸의 논리’에서 찾는다.
전통적 한국 여성보다 더 순종적으로 설정된 소피가 자아에 눈을 뜨는 것은 성(性)을 통해서다.
지하가 소피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으로 그녀의 욕망을 흔들어 깨우는 순간이다. 또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남편의 가족이 소피의 임신 소식을 신의 축복으로 찬양하는 순간 소피는 지하에 대한 열망으로 부지불식간에 신음을 터뜨린다.
여성 관객의 시각에서 그런 소피는 이중적 매력을 지닌다. 소피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욕망을 억누르는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벗어난, 부러운 존재인 동시에 그런 한국 남성에게 포착된 가련한 존재다. 그래서 지하와 처음 몸을 섞을 때 수치심을 느끼고 뜨개질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소피에게 쉽게 동화된다.
닳고 닳은 일부 남성의 시각에서는 그런 소피야말로 중산층 여성의 허위의식을 충족시켜 주는 허상에 불과하다. 소피는 보바리 부인처럼 비극적이지도 채털리 부인처럼 주체적이지도 않다. 더군다나 영화 ‘피아노’의 독립적인 에이다와 달리 “몸 가면 마음도 간다”는 가부장적 문법에 철저히 종속돼 있다.
소피를 사로잡은 지하의 질문은 한국의 ‘제비’들이 사모님을 유혹할 때 빠짐없이 써먹는 진부한 주문이고, 순결한 소피가 자신의 욕망에 눈떠 가는 모습은 1980년대를 풍미한 ‘에마뉘엘’ 시리즈에서 실비아 크리스텔이 극한까지 밀어붙인 캐릭터의 ‘숙녀용’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통속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케 하는 영화다. 21일 개봉, 18세 이상.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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