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머릿속에 떠오를 답을 짐작한다. 그러나 영화 ‘마이 파더’(6일 개봉)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답이 과연 옳은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감정을 건드리지만 결코 ‘오버’하지 않으면서.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한국 출신 입양아 제임스 파커(다니엘 헤니)는 친부모를 찾아 미군으로 한국에 온다. 22년 만에 친아버지 황남철(김영철)을 만나지만 그는 두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형수다. 파커는 힘들게 아버지를 받아들이지만 그에게 또 다른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마이 파더’는 2003년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에런 베이츠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많이들 알고 있는 뻔한 얘기에 다니엘 헤니? 애초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교도소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파커가 서투른 한국어로 “밤에…춥다…감기 조심해요”라고 말할 때, 부자가 벽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며 사진을 찍을 때 서서히 움직이는 관객의 마음은, 파커가 힘줄이 툭 튀어나온 얼굴에 시뻘게진 눈으로 유리 조각을 들고 “내 아버지는 살인자”라고 소리 지를 때 ‘쿵’ 하고 내려앉는다. 유머는 곳곳에 적절하게 삽입됐고 미군 병영 내의 에피소드는 미군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을 자극적이지 않게 이용했다.
공중에 붕 떠 있던 다니엘 헤니의 발은 비로소 땅에 붙었다. 최근의 학력 논란을 제쳐 두고, 이 영화만으로 평가하자면 그는 지금까지의 만들어진 ‘완벽남’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인터뷰에서 “입양아인 어머니와 혼혈인 내가 마을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놀림을 받았고 영화 속 파커처럼 화장실에서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었다”는 그는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입양아의 내면을 무리 없이 소화해 냈다. 언제나 잘하는 김영철은 역시나 훌륭했다. 관객의 동정심과 혐오감을 교대로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는 벌써 살인범을 미화했다는 논란과 피해자 가족의 상영 반대에 부닥쳤다. 제작진은 실화를 ‘재구성’한 것이고 베이츠 씨의 관점에서 봐 달라고 말한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 될 것 같다. 15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실제 주인공 에런 베이츠 인터뷰▼
“사랑하는 내 아버지… 좋은 면에 집중하게 돼요”
2일 오후 7시 인천국제공항, 영화 ‘마이 파더’의 실제 주인공 에런 베이츠(34) 씨는 9개월 된 아들 네이선 군의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양부모인 베이츠 씨 부부와 함께 나타났다.
“부모님께 저희 아버지를 소개하고 같이 영화도 보려고요.”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눴다.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꺼냈다. 어떻게 그를 친아버지로 받아들일 수 있었느냐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게 되죠. 저희 부모님을 보세요. 피가 안 섞였지만 정말 저를 사랑하시죠.” 그러나 그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양부모에겐 친딸 한 명과 한국에서 입양한 세 남매가 있다. 친딸도 결혼해 터키와 러시아 아이를 입양했다. “나무에 다른 가지를 접목하면 나무가 더 잘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죠. 그게 ‘입양’이라고 생각해요.”(어머니 베키 씨)
영화에선 상처 받은 어린 주인공이 노란 페인트를 머리에 칠하지만 베이츠 씨는 “나는 스포츠를 잘해 인기가 많았고 좋은 이웃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다”고 했다. 부모는 그가 어릴 때부터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렸고 피부색이나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고 끊임없이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친부모가 궁금했다. 동행한 친구 김소영(미군 복무 시절 룸메이트) 씨는 “입양아들이 친부모를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말했다.
베이츠 씨는 다음 날 면회 갈 때 아버지에게 보여 줄 가족사진을 갖고 왔다. 기자에게도 보여 주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내’와 아들을 자랑했다. 그에겐 ‘가족’과 ‘사랑’이 인생의 전부다.
그는 영화 주인공인 다니엘 헤니에 대해 “배용준보다 인기가 많으냐”고 물었고, 헤니의 사진을 보며 “제대로 골랐다”며 웃었다. “영화에 부모님도 나온다”고 말하자 어머니 베키 씨가 하는 말. “그럼 내 역할은 앤젤리나 졸리?”
이 사랑스러운 모자를 바라보다가 어머니에게 헤니와 아들 중 누가 더 잘생겼느냐고 물었다. 베이츠 씨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엄마, 사랑해요!” 베키 씨는 아들을 가리켰다. ‘피보다 진한 그 무엇’으로 연결된 모자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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