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배경 ‘인생은 아름다워’…베니니 주연-감독 ‘호랑이와 눈’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당신 시집에서처럼 ‘눈 속에 호랑이’를 만난다면, 당신과 함께 살게요.”

로마 시내 한복판에서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호랑이를 만날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낙천적 웃음과 사랑의 마법을 믿는 영화감독 겸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호랑이와 눈’은 10년 전 ‘인생은 아름다워’로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던 로베르토 베니니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영화다. 그의 정신없는 수다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어쩔 수 없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은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에 욕설이나 비속어가 아닌 시어(詩語)가 펼쳐지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그렸다면, ‘호랑이와 눈’은 전쟁이 한창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했다. 유전이 불타고 밤하늘에 탄환이 불꽃놀이처럼 번쩍이는 바그다드. 전쟁의 극한의 공포를 동화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유머 속에서도 반전(反戰)의 메시지와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베니니의 능력은 놀랍다.

주인공은 낙천적인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아틸리오. 그는 매일 밤 꿈속에서 비토리아라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비토리아는 매일 밤 그에게 뜨거운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비토리아는 냉랭하고 묘한 웃음을 흘릴 뿐. 비토리아가 바그다드로 갔다가 폭발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비토리아를 위해 총탄을 뚫고 영양제를 주렁주렁 매달고 오는 아틸리오가 미군에게 ‘자폭 테러범’으로 오인 받는 장면은 백미다.

비토리아 역을 맡은 여배우 니콜레타 브라스키는 베니니의 실제 부인.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아내를 여주인공으로 선택하고,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음으로써 극중에서도 영원한 사랑을 고백한다. 결혼한 부부의 맞바람, 심지어 스와핑을 소재로 한 영화가 판치는 요즘. ‘호랑이와 눈’은 사랑의 열정이 식어버린 부부들에게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영화다. 12세 이상.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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