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항구도시 탕헤르, 미로같이 연결된 좁은 골목길을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달린다. 경찰은 그를 쫓고, 그는 동료를 쫓는 킬러를 향해 달린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의 지붕 위를 뛰어가던 본, 킬러를 찾아 맞은편 건물의 창문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좁은 욕실 안에서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처절한 격투가 펼쳐진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한 장면이다. 줄에 카메라를 매달아 지붕 사이로 미끄러지게 하며 근접촬영하고 스턴트맨이 카메라를 들고 배우의 뒤를 따라 창문으로 뛰어들며 찍었단다. 미국 연예주간지 버라이어티는 ‘경이로운 테크닉’이라 했고 뉴욕타임스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폴 그린그래스보다 더 액션을 잘 만드는 감독은 없다”고 극찬했다.
‘본 얼티메이텀’은 로버트 러들럼의 스파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본 시리즈, 즉 ‘본 아이덴티티’(2002년)와 ‘본 슈프리머시’(2004년)에 이은 완결편으로 제목 그대로 본의 ‘최후통첩(ultimatum)’이다. 전편에서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군지 계속 찾아 헤매던 요원 제이슨 본은 자신을 살인기계로 만든 미국 중앙정보국(CIA) 내 비밀조직인 ‘블랙브라이어’에 대해 알게 된다. 조직의 비밀을 아는 본을 제거하려 하는 블랙브라이어와 본의 대결이 전 세계에서 펼쳐지고, 본은 점차 자신의 실체에 다가선다.
이 영화는 관객을 숨차게 만든다. 관객에게 잠깐의 휴식이 허락되는 순간은 7개국에서 찍었다는 걸 알려 주려는 듯 영화 사이사이에 마드리드 뉴욕 등 도시들의 전경을 담아낼 때뿐이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린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잡을 때도 흔들리는 카메라에 빠른 편집은 그린그래스 감독의 특징. 불안정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액션 장면은 항상 사람이 붐비는 일상의 공간, 런던에서 제일 복잡한 워털루역과 뉴욕 거리 한복판 등에서 촬영돼 현실감을 높인다. 액션은 전편보다 훨씬 세졌다.
지구상의 누군가 통화 도중 ‘블랙브라이어’라는 단어만 말해도 어디의 누군지 금방 알아내고 그 사람의 모든 동선을 감지하는 CIA도 무섭지만, 본은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는 보통 블록버스터에 나오는 히어로와는 다르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슈퍼 파워’는커녕 최신식 무기 하나 없이 천재적인 두뇌로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 적과 싸우는 그는, 극단적으로 우울하며 액션은 현란하게 ‘오버’하기보단 절제돼 있다. 무엇보다 제이슨 본은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히어로가 아니라 그저 살인기계가 된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몰라 답답해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자신을 겨누는 킬러에게 묻는다. “넌 날 죽여야 하는 이유를 아나?”
이 영화는 지적이고 현실적인 블록버스터로 평가받는다. 뉴욕타임스는 “본 시리즈에서 관객은 본의 아픔뿐 아니라 그가 죽이는 사람의 아픔까지 느끼게 된다”며 “차를 폭파시키고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은 쉽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거꾸로 생각하면 단점도 된다. 이 영화는 무지 심각하고 진지하고 어둡다.
톰 크루즈 하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이선 헌트가 생각나듯, 세 번째로 본을 맡은 맷 데이먼은 제이슨 본과 동일시된다. 깊은 팔자 주름 사이의 입을 꼭 다문 과묵한 이 남자는, 촌스럽게 바짝 깎은 머리에 줄곧 시커먼 잠바와 바지만 입고 나온다. 원래 꽃미남도 아니고 ‘운동 좀 했다’는 듯 웃통을 벗어 제치고 근육을 자랑하는 그 흔한 장면도 없지만, 한번 웃어 주지도 않는 투박한 이 남자의 눈빛과 액션! 몰랐었다. 맷 데이먼이 그렇게 섹시한 줄.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