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옥타브까지 올라가느냐”에 관심을 보였던 팬들도 이제는 그의 ‘개인기’에 주목한다. 데뷔 20주년을 넘겼다는 사실보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깜짝 출연해 개그를 했다는 것에 더 즐거워한다.
노래만 불렀던 이 ‘외골수’ 로커에게 이제 음악은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개그맨 김종서’라 부르는 10대 여고생과 ‘그룹 시나위 출신 로커’로 기억하는 기성세대. 모두가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누구보다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변신이죠. 1990년대만 해도 항상 내 음악이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신비주의’ 전략은 2000년대에 통하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은 김종서가 누군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일단 인지도를 높이자는 일념으로 아예 올해 초부터 방송활동에 주력하고 있어요.”
―최근 신세대들은 ‘개그맨 김종서’로 알고 있는데 슬프지 않나요.
“그런 것만으로도 반가워요. 얼마 전까지 내가 뭘 하든 무관심했는데 지금은 10대 팬이 많이 생겼어요. 오락 프로그램 하나가 음악 프로그램 10개와 맞먹으니까요. 지금 한국에선 어딜 가도 음악에 대한 진지한 얘기는 거의 안 들려요. 내가 무대에서 바지를 벗지 않는 한…. 서태지가 나와야 좀 바뀔까요?”
―아직도 ‘1990년대 한국 록 음악계 대표 가수’로 기억하는 팬들은 익숙하지 않아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죠. 다만 지금은 내 인생의 과도기라 생각해요. 활동 방법만 달리 했을 뿐이지 전 똑같은 사람이에요. 10년 전처럼 외골수 이미지로 포장된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요.”
그는 2005년 9집 발표 후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추석이 지나면 새로운 프로그램 MC를 맡을 것 같다”며 웃는 그는 “10년 전보다 3, 4배 더 활동하니 대인관계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돈 많이 버느냐”고 묻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과거 음반 수입이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승환, 이승철 등 1990년대 함께 활동했던 실력파 가수들도 비슷한 처지”라는 말과 함께.
―간혹 ‘로커’ 이미지를 극대화해 개그를 하는데 스스로 희화화하는 건 아닌가요?
“자칭 ‘털어 주는 로커’라 하며 좀 희화화했죠. 하지만 록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로커에게 틀 같은 건 없으니까요. 자신의 신념만 살아있다면….”
“모든 실력파 가수가 저 같은 활동을 하는 건 옳지 않겠죠. 다만 전 ‘헝그리 정신’ 로커 계보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김종서가 항상 고독하고 베일에 싸여 있는 건 대중이 만든 환상에 불과해요. 거기 갇혀서 솔직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도 문제고. 오히려 지금이 더 ‘록’적이지 않나요?”
―그럼 대중과 타협을 한 건가요?
“‘타협한다’는 말은 건방지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노력에 가깝죠. 김종서 하면 발라드를 원하는 분이 많아 내 목소리를 죽여 보자는 생각도 했고…. 물론 서태지 같은 몇 컷의 이미지만 남은 가수들까지 그래야 되는 건 아니에요. 반대로 대중과 친화된 모습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도 노력이거든요.”
인터뷰 말미에 그의 최종 목표를 묻자 ‘뮤지션 김종서’라고 대답했다.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느낄 때쯤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말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1990년대 실력파 뮤지션이 무너지는 가요계를 살아가는 데뷔 20년차 가수, 또다시 카메라 속으로 사라졌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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