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곽경택]부산영화제, 고맙습니다

  • 입력 2007년 9월 29일 03시 03분


솔직히 나는 부산국제영화제(PIFF)에 불만이 좀 있다. 왜냐? 열심히 부산에서 영화를 찍어도 잘 불러 주질 않으니까. 작년에도 초청이 안 돼서 자비로 KTX를 타고 내려가는데 열차 안 TV에선 ‘친구’와 ‘태풍’이 삽입된 영화제 홍보 영상이 나와 씁쓸했다.

그런데 올해도 또 초청이 안 됐다. ‘사랑’은 이미 개봉한 상업영화여서 초청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래도 좀 섭섭했다. 어쨌든 나는 이번 영화제 기간에 부산을 찾는 손님들을 만나러 간다. 그분들은 당연히 내가 부산에 오는 걸로 알고 있어 서울에서 만나자고 하기가 좀 민망했다.

그 대신 나는 10월 말에 하와이 국제영화제에 간다. 난생처음이다. 작년에는 상하이 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다녀왔다. 영화도 많이 보고 좋은 사람들과 사귀는 계기도 됐다. 초청해 주신 분들께 아직도 감사한다.

그런데 이런 게 영화제다. 자국 영화제에서는 초청을 못 받아도, 그 자국의 영화적 위상 덕분에 타국 영화제에 초청되는 것은 어찌 보면 신나고 바람직한 일이다. 영화가 국경을 넘는 언어가 되고, 영화제가 국내 잔치가 아닌 세계적 행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PIFF가 나를 초청하지 않아도 그저 섭섭함에 그칠 뿐 화가 나진 않는다. 다른 외국 감독 한 사람이 한국을 알고 고마워할 기회를 양보하는 셈이므로.

사실 나는 영화제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영화제는 영화를 공들여 만든 사람들을 치사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그래서 특히 감독들은 깍듯한 대우에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지기 십상이다.

나는 그런 자리가 불편하다. 괜히 그런 파티 분위기에 물들었다가 ‘전투’에 나가기 싫어질까 우려도 된다. 야전(野戰) 같은 영화 제작 현장이 훨씬 편하다. 까다로운 평론가나 기자의 질문에 군색한 변명을 찾지 않아도 되고,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사진 찍히지 않아도 되고, 내가 보기엔 별로인 영화를 찍은 감독이나 제작자와 마주쳤을 때 빨리 도망갈 방법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평소 잘 안 입는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어색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물론 영화제에는 좋은 점도 많다. 영화를 사고파는 장터가 열리고,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안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또 무엇보다 새롭고 진실한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동안 PIFF는 이런 일을 매우 열정적으로 수행해 왔다.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하지 않았던 1회 때부터 12회에 이른 지금까지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지 않고 아주 잘 달려왔다. 지금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영화제 핵심 멤버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다. 그들은 참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내가 영화를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돌리고 주연배우를 찾아 발품을 팔고 투자자들에게 좋은 영화에 투자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그들도 세계 각국의 좋은 영화를 찾고 유명 영화인을 초청하기 위해 러브 콜을 보내고 영화제를 풍성하게 할 돈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손 내밀며 웃음을 짓는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화끈한 후원을 받아 목에 힘 좀 주고 다녀야 정상일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 기회에 PIFF를 이끌어 가는 분들께 부산 출신 감독으로서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내 나라인 한국이, 제 고향인 부산이 결코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화 강국, 영화 도시가 됐습니다. 저를 안 불러 주셔도 좋습니다. 계속 힘차게 이어 가십시오. 파이팅!”

곽경택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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