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촌뜨기 여성이 뉴욕에 온다. ‘프라다’의 앤드리아(앤 해서웨이)는 촌스러운 검정 스펀지 통굽 구두 신고, ‘내니’의 애니(스칼릿 조핸슨)는 정장에 하얀 목양말 신고. ②그런 주인공들이 가장 화려한 곳에 취직한다. 앤드리아는 패션지 편집장 비서로서 ‘슈퍼 된장녀’들과 같이 일하고, 애니는 뉴욕 최상류층 ‘미스터 X’ 가족의 보모(내니)로 취직한다. ③악마가 그들을 괴롭힌다. 해리 포터 미출판 원고도 구하라면 구하고(프라다), 마나님 옷의 드라이클리닝까지 해야 한다(내니). 꿋꿋하게 잘해 낸다. 맡은 일은 프로처럼 해 내는 여성상을 보여 줘야 하니까! ④뉴요커를 풍자한다. 백조처럼 우아하지만 물 밑에서 절박하게 버둥거리는 패션 피플, 만날 쇼핑만 하고 정작 자기 자식은 돌보지 않으면서 내니와 갈등이 생기면 ‘내니 문제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상류층을 조롱한다. ⑤주인공들은 그 과정에서 성장하며 결국 자기 스타일대로 갈 길을 간다.
중요한 건 4번이다. 주제는 젊은 여성이 낯선 럭셔리 문화 속으로 들어가 부딪히다 자아 성장을 이룬다는 것인데, 그 자아 성장의 동력은 그 세계가 허상이라는 깨달음. 그런데 그 비판의 잣대가 참 전형적이다. ‘프라다’의 잡지 편집장 미란다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꼭 성격이 이상하고 출세를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린다. ‘내니’에서도 모든 것을 갖춘 듯한 여성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가정에 문제가 있다. 영화는 우리에게 실컷 화려한 세계를 보여 주고는 ‘멋지지? 그렇지만 별것 아냐. 걔들도 알고 보면 힘들어’란다. 자기보다 예쁘면 화장발에 성형발이고 돈 많으면 분명히 부동산 투기나 탈세의 결과라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겠지.
사실 이 영화들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 ‘겉모습’ 때문이다. 그 세계의 허상을 까발린다지만 결국 치크 리트나 이 영화들이나 또한 그 허상을 강조해 장사를 한다.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 건 작년의 샤넬 컬렉션을 통째로 옮겨 놓은 ‘프라다’의 의상, ‘내니’에서는 365일 한 켤레씩 신어도 다 못 신을 미시즈 X의 구두와 새빨간 크리스티앙디오르 드레스다. 차라리 솔직한 속물근성을 내보이는 게 더 공감이 갈 듯한데, 영화는 이들을 전략적으로 내세우며 소비 욕구를 마구 자극해 놓고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 포도’ 얘기처럼 교훈을 주며 마무리를 짓는다. 어쩌라고. 불만 갖지 말고 주제 파악하라는 말씀?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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