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첫 대선 TV토론… 종합시청률 55.7% 기록

  • 입력 2007년 10월 24일 03시 03분


5년 전엔 관심 집중과거 대선 때 후보 초청 TV토론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2002년 12월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TV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5년 전엔 관심 집중
과거 대선 때 후보 초청 TV토론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2002년 12월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TV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올해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열린 TV토론은 후보자의 정책 및 자질 검증이라는 TV토론의 목표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한나라당 경선 TV토론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차명 보유 및 BBK 주가조작 의혹 등 이명박 후보 개인의 도덕성 논란이 정책 검증을 뒤덮었다. 대통합민주신당 TV토론은 시작부터 세 후보가 저마다 한나라당 이 후보와 각을 세우더니 급기야 불법·동원 선거 논란으로 마무리됐다.

2002년 대선 당시 TV토론은 정책 검증보다는 정치 공방으로 흐른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올해 양당의 경선 TV토론은 이보다도 더 퇴보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김대중 vs 이회창, 인물 비교 무대된 1997년 토론=1997년 3회 실시된 대선 후보 TV토론은 그해 11월 중순 이후 외환위기의 결과 ‘경제파탄 책임론’이 핵심 이슈로 대두됐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김영삼(YS) 대통령과 그 밑에서 감사원장, 총리, 당대표를 지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경제 파탄의 주범”이라며 이회창 후보를 협공했다.

또한 이회창과 김대중이라는 뚜렷한 개성과 삶의 이력이 대비되는 여야 후보가 존재하고 사상 첫 정권교체 여부 등이 관심거리로 떠오르면서 TV토론이 기존의 합동연설회를 대체했다.

이 해에는 또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이른바 ‘9룡’이 등장하면서 당내 경선 TV토론도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인제 후보는 당돌 패기를 트레이드마크 삼아 ‘이인제 돌풍’이라 불릴 정도로 TV토론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잠바 차림으로 대선 TV토론에 나와 이회창 후보를 맹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TV토론 수혜자는 김대중 후보였다. 김 후보는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 단일화 TV토론과 대선 TV토론을 통해 구체적 수치 등을 제시하며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각인시켜 ‘반DJ정서’를 상당히 누그러뜨렸다는 분석이다.

▽2002년, 이슈 대결의 한판=2002년 역시 3번 열린 대선 TV토론은 1997년에 비해 시청률(지상파 방송3사 종합)이 33.8%로 떨어졌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병역비리 공방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장인 부역 논란을 비롯해 뜨거운 쟁점이 많았다. 이에 따라 TV토론이 양 후보의 이슈 대결장이 되면서 토론 내용이 누리꾼과 여야 지지자들로 확산되는 매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또한 이에 앞서 노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간의 후보 단일화 TV토론도 한나라당이 ‘선거법 위반’ 논란을 제기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 TV토론에서 노 후보는 생경한 단어를 쓰며 공세적 태도를 취하던 이전 TV토론과는 달리 ‘큰형님’ 이미지로 안정감을 보이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권영길 신드롬’을 일으키며 TV토론 최고의 스타로 부상했다. 권 후보는 이 후보와 노 후보에 대해 톡톡 튀는 양비론을 날리면서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한나라당은 부패 원조당, 민주당은 부패 신장 개업당’ 등의 유행어까지 만들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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