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에서 앤젤리나 졸리의 ‘섹시한 도마뱀’ 같은 황금빛 나체를 봤을 때, 그게 ‘진짜 졸리’가 아닌 줄 몰랐다.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앤젤리나 졸리가 출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건 실사 영화도 아니고 전통적인 의미의 애니메이션도 아니다. 배우들의 몸과 얼굴에 센서를 붙여 동작을 ‘캡처’한 뒤 디지털로 만들어 낸 영상이다. 즉 실제의 액션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변환시킨 것. 논란이 있지만 아카데미상을 수여하는 미국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는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있다. ‘포레스트 검프’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만든 영화 ‘베오울프’(14일 개봉)다.
○ 몸-얼굴에 센서 붙여 동작 캡처
원작은 6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3183줄의 서사시 ‘베오울프’. 내용이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영화 ‘애니홀’에서 우디 앨런이 다이앤 키튼에게 “베오울프를 읽어야 하는 수업은 듣지 마”라고 말했을까. 이 서사시를 ‘스타더스트’의 작가 닐 게이먼과 ‘저수지의 개들’의 작가 로저 에이버리가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암흑의 시대, 타고난 영웅 베오울프(레이 윈스톤)는 흐로스가 왕국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 그렌덜(크리스핀 글로버)을 처치한다. 아들을 잃은 그렌덜의 어머니 물의 마녀(앤젤리나 졸리)는 복수를 다짐하고, 베오울프에게 시련이 닥친다.
원작에선 젊은 베오울프가 그렌덜을 처치한 뒤 갑자기 50년을 뛰어넘어 용과 싸우다 죽는다. 작가들은 이 스토리에 상상력으로 많은 부분을 채워 넣었다. 그 결과 영웅이라고 칭송받지만 한순간의 욕심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대가를 치르는 나약한 한 인간의 이야기가 됐다. ‘슈퍼 파워’ 영웅에게 질린 할리우드가 최근 자주 보여 주는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 새로울 것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 신화 속의 캐릭터 살려내고… 제작비 줄이고…
12일 언론에 처음 공개된 이 영화의 시사회는 아이맥스 3D 상영으로 진행됐다. 작가 게이먼은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그래픽 노블(성인 취향의 두꺼운 단행본 만화) 속을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그래픽 노블보다는 ‘3D게임 속’이다. 캐릭터들이 바로 코앞에서 연극을 하는 듯, 붉은 살점과 근육과 비늘이 뒤섞인 그렌덜의 끔찍한 피부에선 악취가 나고 그의 피와 침은 얼굴에 툭 떨어지는 것 같다.
극장에 따라 2D 버전이 상영되는 곳도 있지만 기왕이면 3D로 상영되는 곳(전국 주요 멀티플렉스 37개관)에서 보는 게 낫다.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배경인 고대의 세계를 100%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영화 ‘300’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CG 논란이 있었던 복근까지 포함해서 ‘300’의 배우들은 ‘진짜’였지만 베오울프의 배우들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표현에 따르면 ‘디지털 복제품(Digital Replicas)’이다.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어떤 배우도 감독이 생각한 캐릭터의 모습과 완벽히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해서 크리스핀 글로버를 괴물로 만들고 퉁퉁한 동네 햄버거 가게 아저씨같이 생긴 키 178cm의 레이 윈스톤을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 기술은 감독의 전작인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도 구현됐지만 당시보다 더 진보됐고 눈꺼풀의 움직임까지 포착해 내는 기술로 ‘폴라…’에서 어색했던 눈의 움직임을 극복했다. 얼굴의 솜털까지 보일 정도로 실사보다 더 실사 같지만 배우들의 눈이나 움직임이 로봇처럼 보일 때도 많다.
당시 임신 3개월이었다는 앤젤리나 졸리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센서를 가득 달고 전신수영복 같은 슈트를 입고 이틀 반 만에 촬영을 마쳤는데 나중에 보니 부끄러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앤젤리나 졸리는 목소리와 꼬리만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면 딱 세 번 나오지만 그 ‘포스’는 굉장하다. 15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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