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조금만 떨어지면 나오는 소리. 그전에 웰 메이드 한국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 알아보시지.”(ID sub××××)
“2개월마다 한 번씩 보는 기사다. 짜증난다.”(ID liy××××)
최근 한국 영화 관객이 줄었고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영화의 위기를 진단한 보고서를 냈다는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오르자 500여 개의 댓글이 붙었다. 놀랐다. 반응이 이렇게 냉소적일 줄이야. 모두 ‘재미없는 걸 어떻게 하냐’며 위기론 자체를 지겨워했다. 심지어 이 얘기를 쓴다고 하자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야, 위기론이 지겹다는 것도 지겨워.”
초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줄줄이 개봉하면서 나온 위기론, ‘디워’와 ‘화려한 휴가’ 이후 관객이 줄면서 또 위기론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한국 영화 점유율은 46%(서울 기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나 떨어졌다.
2001년부터 작년까지의 기사를 찾아봤다. 매년 똑같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2년에도 올해와 똑같이 ‘홍콩 영화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00만 영화가 두 편 나온 2004년에도 하반기에 점유율이 떨어지자 또 위기, 작년에는 개봉 영화 108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이 겨우 20편 정도에 수출도 줄어 위기론이 심화됐다.
21세기 들어 내내 위기? 아니다. 구조적 문제는 외면하면서 수치만 보고 위기론을 남발한 언론의 책임도 크다. 사실 한국의 자국 영화 점유율은 미국 인도를 빼면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1년 내내 점유율이 60% 이상은 돼야 위기가 아닌 건가?
어쩌면 지금 위기는 진짜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만난 영화계 사람의 말은 충격이었다. “작년엔 진짜 너무했어요. 예전엔 예닐곱 번 고칠 시나리오를 두세 번 고치고 촬영했죠. 솔직히 아예 시나리오가 휑한 영화도 봤어요. 애드리브 잘하는 배우 캐스팅해 놓곤 대사에 아예 ‘OOO: 애드리브’ 이렇게 돼 있다니까요.”
물론 극히 일부일 거다. 어쨌든 작년엔 너무 많이 찍었고 그만큼 망한 영화도 늘었다. 그 적자를 떠안은 올해는 관객이 더 줄었단다. 큰일이다.
그런데 어쩌나. 관객들이 한국 영화계를 ‘양치기 소년’처럼 생각하는 게 더 큰일이다.
시사회에서 배우나 감독들은 자주 말한다. “요새 한국 영화가 어렵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헷갈린다. 한국 영화가 어려우니까 재미없어도 있다고 쓰라는 얘기인지, 재미는 없지만 한국 영화니까 보자고 쓰라는 건지. 진심으로 한국 영화가 잘되길 바라지만, 좋은 작품이 많으면 점유율이 높아지고 아니면 잠시 낮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그렇게 말하면 매국노가 되는 기분이다.
1000만 명이 본 한국 영화가 4편이나 나오는 동안 역대 외화 최고 흥행작은 올해 개봉했던 ‘트랜스포머’(737만 명)였다. 왜일까? ①외화는 그만큼 훌륭한 영화가 없었다. ②관객은 한국 영화만 사랑한다. ③정서에 맞고 재밌으니까 본 거다. 고로, 좀 덜 볼 때도 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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