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이 그일까… 내관 처선이 그일까… ‘살인마’가 그일까

  • 입력 2007년 11월 27일 02시 52분


한동네에 사는 두 살인마 효이(류덕환·왼쪽)와 경주(오만석)의 이야기, 영화 ‘우리 동네’. 사진 제공 아이엠픽쳐스
한동네에 사는 두 살인마 효이(류덕환·왼쪽)와 경주(오만석)의 이야기, 영화 ‘우리 동네’. 사진 제공 아이엠픽쳐스
■ ‘우리 동네’서 영화 첫 주연 오만석

23일 오후, 비가 쏟아지는 경기 용인시 민속촌의 체감온도는 서울보다 5도는 낮은 듯했다. 내복을 두 개 껴입고 그 위에 핫팩을 붙인 뒤 다시 티셔츠를 두 장 입고 나서 한복을 입은 배우 오만석(32·사진)은 그날 아침에야 나온 ‘쪽대본’을 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SBS 드라마 ‘왕과 나’의 촬영 현장. 그를 만나러 간 건 영화 ‘우리 동네’의 개봉(29일)을 앞두고도 드라마 촬영 때문에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였다.

그의 차례가 됐다. “세간에서는 내시를 양물이 없는 고자라 하지만….” 저 사람이 ‘우리 동네’의 그 잔인한 살인마인가?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뮤지컬계의 빅 스타인가? 브라운관과 무대와 스크린에서 보이는 그의 너무도 다른 모습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이건 그가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증거다.

“제 본업이오? 그냥 배우죠.” 연극과 뮤지컬은 익숙해서, 영화와 드라마는 알아가는 맛에 다 재미있단다. 내년엔 창작 뮤지컬의 연출자로도 데뷔한다. 진짜 욕심쟁이다.

“‘배우나 제대로 할 것이지’ 하고 욕먹을 것 같아요.”

이웃사촌들의 따뜻한 이야기 같은 제목과는 달리, ‘우리 동네’는 살인마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사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하긴, 그들이 이웃사촌인 건 맞긴 하다.

평범한 동네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난다. 순진한 얼굴을 한 천재적인 살인마 효이(류덕환)의 짓. 추리소설 작가 경주(오만석)는 집세를 재촉하는 집주인 여자를 충동적으로 살해한 뒤 연쇄살인범의 소행인 것처럼 꾸며 놓는다. 둘은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시작하는 스릴러, 관건은 이들이 살인마가 된 이유와 둘의 관계다.

정길영 감독은 “류덕환은 천재적 배우, 오만석은 동물적 감각의 배우”라고 말했다.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둘은 자신에게 꼭 맞는 캐릭터의 살인마가 된 셈.

“저는 다중인격자인가 봐요. 다혈질이었다가 어떨 땐 너무 이성적이고, 왔다 갔다 해요. 경주를 연기할 땐 평소의 저보다 훨씬 거칠었죠. 그런데 배우는 죽을 때까지 자기 본모습을 모를 것 같아요. 진짜 내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랄까. 자기를 다 안다면 한계를 아는 거니까 배우 못 하죠.”

오만석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공부를 통해 그들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전혀 문제없는 환경에서도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 넘는 존재, 그래서 오히려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에 불쌍하기도, 무섭기도, 웃기기도 한 인물로 표현했다. 공원 화장실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가 피 묻은 소주병을 들고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을 능청스럽게 부를 때, 긴장했던 관객들은 섬뜩해 하면서도 웃는다.

“정말 잔인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가해의 본능을 관객이 동시에 느끼도록 연기했어요. 참, 근데 (피해자가 되는) 여배우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막 때리고 머리채 잡고.”

이 영화의 공포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이웃 사람이 실은 살인마라는 설정에서 온다. 만약 이웃에 살인마가 산다면? “어…, 이사 가지 않을까요?”

그는 내년 초 ‘왕과 나’의 촬영이 끝나면 여름에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내 마음의 풍금’으로 무대에 복귀한다.

연출작 ‘즐거운 인생’은 내년 말에 들어간다. 그 사이에 영화도 ‘불러 주면’ 또 찍을 거란다. 올해처럼 정신없이 바쁘겠지만, 그는 성실히 착착 해 나갈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에 어느 영화 관계자에게서 들은 말에 따르면 그는 말한 대로 꼭 하는 사람이니까.

“제가 한국 영화 20여 편 했는데요. 마케터들과 같이 술 먹고 돈 내는 배우는 만석 씨가 처음이었어요. 그것도 제가 이미 카드를 긁었는데 막 뛰어와 그걸 취소시키고 다시 계산하더라고요. 자기가 처음에 산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꼭 지켜야 한다며.”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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