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방에 폭설이 내리던 지난해 12월 31일, 익산에서 군산으로 향하던 새벽 열차에는 손수 농사지은 밭작물 보따리를 머리에 인 할머니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군산역 앞에 열리는 새벽시장에 가는 길. 700원이면 군산까지 갈 수 있었는데 이 열차가 사라지면 갈 길이 막막하다. 간이역인 오산리역에서 탄 이똑순 할머니는 “1월 1일부턴 입 봉하고 살아야제. 발 묶어 놓았으니 이젠 군산 못 오지. (집에) 전기장판 틀어놓고 앉아 있어야제”라며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통근열차가 사라진다는 소식에 일부러 기차를 타러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최병식 김윤경 씨 부부는 20년 전 이 기차를 타고 결혼을 약속했던 커플. 이들은 연애 시절 추억이 어린 이 기차를 대학생 아들, 고교생 딸과 함께 탔다. 또 이기명(70) 할아버지는 마지막 칸, 맨 뒷자리에 앉아 50년 전 첫사랑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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