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다시 주말극으로 맞붙은 베테랑 작가들의 노작(勞作) 대결이 흥미롭다. 2일, 9일 각각 첫 방영을 한 주말연속극 KBS2 ‘엄마가 뿔났다’(토일 오후 7시 55분·극본 김수현·연출 정을영)와 SBS ‘행복합니다’(토일 오후 8시 45분·극본 김정수·연출 장용우)는 드라마만큼 작가들의 필력이 궁금한 작품이다.
이름 석 자만으로 채널을 고정시키는 두 작가의 복귀작은 시작부터 순조롭다. ‘엄마가 뿔났다’는 첫 회 시청률 25.3%에 이어 방영 2회 만에 시청률 30%를 육박했으며, ‘행복합니다’도 첫 회 20.9%, 2회 21.3%(시청률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를 기록했다.
두 작가의 주말극 경쟁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KBS2 ‘부모님 전상서’와 MBC ‘한강수 타령’이 같은 시간대에 맞편성됐기 때문. 하지만 이번엔 시간대가 달라 정면대결은 피했다. 따라서 연달아 방영하는 두 드라마의 스타일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밌는 볼거리다. 김수현(65) 작가의 드라마가 정곡을 찌르는 속사포 대사가 강점이라면 김정수(59) 작가의 힘은 삶의 내면을 파고드는 묘사력에서 나온다.
○ 너무도 ‘김수현스러운’…‘엄마가 뿔났다’
지난해 화제작 SBS ‘내 남자의 여자’로 불륜 치정극을 선보인 김수현은 다시 훈훈한 가족극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뿔났다’는 엄마 김한자(김혜자)를 중심으로 변호사인 첫째 딸(신은경), 깐깐한 재벌가와 결혼하려는 둘째 딸(이유리), 다섯 살 연상의 애인과 결혼 전에 애부터 낳은 아들(김정현)이 엄마를 뿔나게 한다는 김수현표 가족드라마. 대가족 설정,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말투, 비수처럼 찌르는 대사, ‘김수현 사단’으로 불리는 출연진 등도 여전하다.
극중 아버지(백일섭)가 20년 된 고물차를 계속 몰고 다니는 것에서 보여 주듯 이 드라마는 손때 묻은 옛것에 대한 애정과 아날로그적 정서로 가득하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씨는 “최근 드라마들이 가지고 있는 외형적인 화려함에 대한 반격이라고 할 정도로 김수현 작가의 전작 ‘부모님 전상서’보다 더 과거로 돌아간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김한자가 쏟아내는 독백과 방백 등 각종 혼잣말은 이 드라마의 백미. “알면서도 나는 내 인생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래, 잘 키워 봐라. 자식이란 게 나 죽는 날까지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인지 알 날이 있을 거다” 등 모든 짐을 혼잣말로 이겨내려는 엄마의 ‘말부림’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 ‘서민작가’의 재벌 이야기…‘행복합니다’
반면 ‘전원일기’ ‘그대 그리고 나’에서부터 설날 연휴 화제작이었던 ‘쑥부쟁이’까지 주로 소시민의 삶을 그려 온 ‘서민작가’ 김정수 씨는 이번에 화려한 재벌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행복합니다’는 재벌 2세 딸(김효진)과 소시민 가정의 아들(이훈)이 결혼하면서 벌어지게 되는 다툼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첫 회부터 홍콩을 배경으로 한 해외 로케이션 등 스케일 큰 영상을 선보이며 ‘김정수 드라마답지 않은 드라마’라는 평을 듣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은 극과 극. 속도감 있는 전개로 “재벌가 박 회장(길용우)네의 화려함과 아들 넷을 둔 홀아비 이철곤(이계인)네의 소박함이 드라마 속에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호평과 동시에 “신분 차이를 뚫는 두 남녀라는 소재가 뻔하다” “재벌가를 그리는 시선이 너무 단선적”이라는 일부 지적을 받고 있다.
다소 뻔한 설정을 얼마나 생생한 현실적인 상황으로 탈바꿈시킬지가 성공의 관건이다. 서민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난 김 작가가 화려한 배경에 숨겨진 갈등을 앞으로도 특유의 인간적인 따뜻한 시선으로 얼마나 잘 포착할지도 주목된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