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국 영화가 새로 나왔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안종화 감독의 1934년 작 흑백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를 발굴했다고 4일 밝혔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로 꼽혀온 양주남 감독의 ‘미몽’(1936년)보다 2년 앞선 작품이다. 안 감독은 배우 출신으로 ‘꽃장사’(1930년)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모두 12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필름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이 영화는 복사본(print)이 아닌 질산염 재질의 원본필름(original negative)으로, 1930년대까지 사용되던 질산염 재질의 필름이 발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발견된 필름은 모두 9롤이며 그중 훼손이 심한 부분을 제외한 약 73분 분량이 복원됐다.
영화평론가 김종원 씨는 “무성영화 말기 한국 영화의 형태와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을 국내에서 발굴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현존하는 무성영화는 ‘검사와 여선생’(1948년) 한 편이 있으나 이는 유성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청춘의 십자로’에는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1926년)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신일선과 액션 스타 이원용 등 무성영화 시대 인기 배우들이 출연했다. 농촌 청년 영복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겪는 고난을 그렸다. 당시 서울 한량들이 골프를 치거나 카페 여급 영옥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영상자료원은 지난해 개인소장가로부터 이 필름을 인수해 복원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하는 것을 기념해 5월 9일 개관 기념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이 영화를 공개한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