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과 연애를 해? 외로워 미친걸까?

  • 입력 2008년 3월 17일 19시 53분


[리뷰]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소심남 라스에게 애인이 생겼다

알고 보니 ‘리얼 돌’ 비앙카인데…

촌스러운 차림새에 답답해 보이는 콧수염, 27살 라스(라이언 고슬링)는 소심한 남자다. 그에겐 모든 인간관계가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바로 옆에 사는 형과 형수의 식사 초대마저 회피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그가 형과 형수에게 소개한 여자친구 비앙카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실리콘 인형, 즉 '섹스 토이'로 사용되는 '리얼 돌(real doll)'이었다. 형과 형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동네 의사의 조언에 비앙카를 사람처럼 대하고, 마을 사람들도 비앙카를 새로운 이웃으로 따뜻하게 맞아준다.

20일 개봉하는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원제 Lars And The Real Girl)는 자기 안에만 머무르던 상처 입은 한 남자가 가족과 이웃에 의해 치유 받는 따뜻한 성장기다. '노트북'으로 알려진 주연 배우 고슬링은 미국에선 젊은 연기파로 인정받지만 국내에는 생소한 얼굴. 작은 시골마을을 돌며 촬영된 화면도 소박하기만 하다. 그러나 미국 인기 드라마 '식스 피트 언더'의 작가 낸시 올리버가 특이한 소재로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이 이야기는 작년 전미 비평가 협회 각본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리얼 돌'이라고 섹스 코미디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라스는 비앙카와 같은 방에서 지내기는 곤란하다며 비앙카를 형의 집에 재울 정도다. 잔잔한 웃음과 공감이 있을 뿐, 폭소는 나오지 않는다. 비앙카를 조심스럽게 안아 식탁 앞에 앉히고 휠체어에 태워 교회로 데려가며 지극 정성을 쏟는 라스의 행동은 웃음 보다는 '도대체 왜 저럴까'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영화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마치 반려동물에게 온 정성을 쏟는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에겐 우스워보여도 라스는 비앙카를 진심으로 대한다. '리얼 돌'이지만, 원제처럼 그에겐 '리얼 걸'이다. 사실 잔소리 없이 얘기를 들어주고 절대 한 눈 팔지 않으며 원하는 대로 데리고 다닐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은 상대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스는 의사에게 비앙카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의 얘기를 하고, 비앙카를 데리고 다니며 조금씩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라스의 비밀과 마음속의 상처가 하나 둘 드러나며 그는 성장한다. 그를 치료하는 의사도 또 라스를 좋아하는 직장 동료도 모두 외로워하는 사람들이다. 라스를 도우면서 그들도 성장한다.

사회적으로 '정상'이 아니라고 규정되는 사람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의 눈높이에 맞춰주는 이야기에서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연상했다. 그러나 '싸이보그'에서는 같은 정신병 환자끼리의 이해였다. 여기서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 전부다 비앙카를 인정하고 라스를 돕는다. 아무리 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이라지만 대책 없는 낙관주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다. 그러나 항상 라스를 걱정했던 라스의 형수는 처음에 라스의 상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에게 말한다. "우리 역시 자기 세상에 갇혀 살잖아." 멀티플렉스 '씨너스'에서만 개봉. 15세 이상.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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