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는 밤,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감시소초(GP)에서 소대원 21명 중 의식 불명의 1명을 제외하고 20명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군은 진상조사팀을 급파하지만 조사팀 또한 폭우에 막혀 문제의 GP에 갇히게 된다.
영화 ‘GP506’은 GP에서 벌어진 의문사를 다룬 스릴러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에서 대작인 ‘삼국지-용의 부활’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개봉 10일 만에 관객 70만 명을 모으며 흥행도 순조롭다.
공수창(47) 감독은 군(軍) 영화에 ‘집착’한다. 그는 ‘하얀 전쟁’(1992년)의 각본을 썼으며 베트남전을 다룬 ‘알포인트’(2004년)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다. 이번 작품 역시 그가 쓰고 연출했다.
공 감독은 “현대 사회에서 공포의 핵심은 억압이다. 억압이 가장 극단적으로 상징화된 공간이 군대다. 우리나라에 학교 괴담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다루는 군대는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상징된다.
육군 병장 출신인 그는 “군대 경험이 시나리오를 쓰는 동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1983년부터 1986년까지 강원 속초의 탄약부대에서 복무했다.
“국문학도였는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당시 군에서는 일기 쓰는 것도 금지돼 있었는데 몰래 쓰다가 들켜서 보안사에 끌려가고 영창도 갔어요. 군 고참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병이 되고 나니 어느새 예전 고참과 똑같아진 제 모습을 깨닫고 그 충격에 실어증이 걸린 적도 있고요.”
이번 영화의 소재도 그의 전방 복무 경험에서 얻었다.
“전방에선 GP에 관련된 여러 가지 괴담이 많았어요. 20명이 (북한군에 의해) 몰살당했는데 시체가 모두 목이 없더라는 ‘바비큐 괴담’이 대표적이죠. 저 때만 해도 한 소대원이 다른 소대원들을 죽이고 북으로 넘어가기도 했고요. 당시 환경에서 그런 이야기들은 보도될 수 없었겠지만.”
GP에서 발생한 의문사의 한 원인이 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도 전방에서만 출몰하는 ‘한타 바이러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GP는 남북 대치의 상징적 공간이지만 그의 영화에선 남북 관계는 부각되지 않는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스템에서 개인의 존엄성이 말살될 때 느끼는 절망감이에요. 1990년대 이후 젊은이들은 분단이나 민족 문제로 힘들어하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GP506은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의외로 여성 관객이 많다. 이 영화 예매자의 52%가 여성이다.
공 감독은 “나 역시 이 영화를 남성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여성이 더 본다고 해 놀랐다. 아마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