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대통령상’ 수상
‘참아주세요’ 간주 부분
‘밀양아리랑’ 변형 삽입
29일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 퓨전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악은 퓨전 음악이 아니면 일반인들이 좀처럼 접할 수 없음에도 그는 정통의 길을 간다고 못박은 것이다.
4월 ‘가야금 트로트’라는 장르의 앨범을 발표한 쌍둥이 자매 가야랑도 처음 이 부분에 대해서 고심했다.
언니 이예랑은 동생 이사랑과 함께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가야금 하나를 들고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 특강을 했다. 주어진 시간은 2시간. 그러나 결국에는 학생들의 질문공세로 1시간씩 연장되곤 했다. 쌍둥이 자매는 이렇게나마 가야금이 알려지는 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미미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오래 가지 않았다. 이때 이사랑이 언니를 설득했다.
“언니 우리가 가야금의 대중화, 대중화 말만 하지 말고 대중 앞에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아. 지금 언니가 하고 있는 가야금 연주는 벽에 걸린 액자에 갇혀있는 음악이야. 음반을 통해서 가야금 소리를 더 들을 수 있게 해줘.”
이렇게 가야랑은 앨범 작업에 들어갔고 2008년 4월 퓨전국악 앨범 ‘가야랑’을 발표했다.
사실 이예랑은 국악인의 변신을 반대해온 사람 가운데 하나다. 어릴 때부터 국악기 연주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가야금을 탔던 그는 가야금을 손에서 단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다. 지금도 가야금 예찬론을 입에 달고 산다. 이예랑은 또한 2005년 4월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로 제15회 김해 가야금 경연대회에서 최연소 대통령상을 수상한 젊은 명인이다.
“처음에는 저희가 연예인처럼 예쁜 것도 아니고 가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연예인이 소속된 기획사 7군데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생각조차 안 했어요. 그러다가 동생 말에 마음이 움직였죠. 이제는 가야금 음률을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저희를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욕을 하기 위해 ‘가야금’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입에 올린다면 그걸로 만족해요.(이예랑)”
트로트와 가야금이 믹스된 가야랑 1집 타이틀곡 ‘수리수리마수리’는 25현의 개량 가야금과 12현 일반 가야금의 연주로만 만들어진 곡이다. 개량 가야금으로 코드를 잡고 일반 가야금으로 멜로디를 연주했다. 앨범 수록곡 ‘참아주세요’에는 ‘밀양아리랑’을 간주 부분에 즉흥적으로 변주해 삽입했다. 어떤 이들은 가야랑의 노래를 듣고 “대체 가야금 부분이 언제 나와요?”라고 묻지만 쌍둥이 자매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분명 가야금 가락이지만 익숙했던 악기 소리처럼 친숙하다는 말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저희가 앨범 낼 때 국악기를 내세워 시선을 끈다는 비난이 많아요. 저희의 바람은 국악기로 대중음악을 하는 게 더 이상 특별한 일이 되지 않는 거에요. ‘국악은 정체돼 있는 게 아닌 현재진행형 음악인 것이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