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의 공연 뒷풀이]평생을 허비한 당신 ‘5분의 자유’ 있다면?

  • 입력 2008년 5월 2일 08시 30분


만약에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5분’이 주어진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에이… 투명인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졸아서 정류장을 지나쳐 간발로 지각할 것 같을 때 바로 이 ‘5분의 자유’만 있다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지각이 아니라고 인정을 해주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신기해서 궁금한가 아니면 어이없기만 한가?

이 이야기는 ‘어떤 나라’ (재밌게도 극 중에 나오는 나라 이름이다)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 김 씨(주인공 이름도 짓기 귀찮았다고 한다)에서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영 공부에는 소질이 없던 김 씨. 오직 딱 한 과목 ‘생물’시간에만 졸지도 않고 집중하는 이유는 바로 붉은 머리 개미(적두개미) 때문이다. 거기다 김씨의 꿈은 바로 이 적두 개미를 연구하며 평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현실이 그러한가? 김씨의 성적에 맞는 생물학과가 없어 그 길로 적두개미를 잠시 접어두고, 아니! 돈을 번 다음에 공부해야지 결심을 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 든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고 보니 어느덧 중년.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생 결산 프로그램’을 보며 김 씨도 본인의 인생을 결산하고 충격을 받는다. 이미 지금도 마이너스요, 그 빚을 모두 갚으려면 35년이나 걸린다니 평생을 빚만 갚다 죽는다는 말이다. 마이너스도 결산하고, 적두개미 연구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직장생활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김씨는 그렇게 ‘와이프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말린다’는 그 사업구상을 하게 되고, 바로 역사의 길이 남을 세기의 발명품 ‘5분의 자유’ 상품을 출시하게 된다.

이는 ‘어떤 나라’의 대혼란 시발점이 되는데…

프랑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벽뚫남)’와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 ‘거울 공주 평강 이야기(거평)’가 떠올랐다. 어리버리 하다 결정적인 순간 겁 없이 뛰어드는 듀티율과 김 씨가 비슷하고, 신기하게도 프로그램 곳곳에 그려진 일러스트마저 ‘벽뚫남’의 그것과 꼭 닮았다.

작곡 역시 ‘거평’의 노선락 작곡가의 이름이 보인다. 이미 ‘거평’에서 눈치 챘겠지만 이 작품은 기존의 작품 형태와 무척 다르다.

바로 ‘국악 뮤지컬’. 라이선스가 넘쳐나는 현 산업에서 한국의 것을 지키고 알리고자 부단히 애쓰는 한 극단의 힘겨운 작품이 아닐까?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 작품은 순수 창작은 아니다.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라는 스페인 작가의 ‘시간을 파는 남자’ 원작이 엄연히 있다. 거기다가 안무, 노래, 구성이 세련되면서도 또 펑퍼짐한 (말이 안 되지만 진짜 그렇다) 오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디 배우 프로필을 보자. 한 명도 모르겠다. 극중 분장이 심히 원초적이라 분명히 본 작품인데도 도통 배우 얼굴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특이한 것이 배우 이름 옆에 있는 또 다른 이름들 ‘사사’다. 그들의 스승인 모양이다. 소리꾼 배우, 악사 배우의 단순한 프로필에서 책임감이 듬뿍 느껴진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문화일보홀에서 이번 주말까지만 만날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 올해 봤던 뮤지컬 중 가장 흐뭇한 작품이 아닐지…아 자랑하고 싶어라 아 소문내고 싶어라.

최 지 수

도토리 파는 회사에 다니며 공연을 사랑하는 공연 마니아

공연장에서 아리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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