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치는 변호사, 박지영 “음악…암투병…고시…치열했기에 행복했었다”

  • 입력 2008년 6월 28일 07시 54분


대부분의 교향곡은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형적인 교향곡이라면 엄격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 느리고 사색적인 2악장, 무도회풍의 3악장을 거쳐 화려한 피날레로 종점을 찍게 된다. 교향곡을 들으며 그 배치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교향곡을 닮았다. 물론 신의 악보는 인간의 그것이 아니기에 종잡기가 어렵다. 완성된 곡을 되풀이해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래, 인생은 교향곡이야’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박지영 변호사는 남들이 평생에 걸쳐 살아 낼 네 개의 악장을 인생 전반부에 모두 연주해버린 사람이다. 사람의 삶을 무딘 칼로 토막을 낼 수 있다면, 그는 정확히 네 등분의 인생을 살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건반 위에서 보내며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시간, 19세에 찾아온 임파선 암과의 투병, 삶의 전환을 위해 사법고시에 매진하던 때, 그리고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 ‘피아노 치는 변호사’ 박지영. 그토록 치열했던 지난 시간조차 ‘행복했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박지영 변호사를 만난 것은 낮 비가 내리던 오후였다. 로펌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는 피아니스트도 변호사도 아닌, 아침 등원 길에서 아이들을 맞는 유치원의 교사 같은 모습이었다.

-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시절과 법학도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시절 중 어느 쪽이 더 힘들었나요?

“둘 다 행복하고 재미있었어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훨씬 더 재미있는 거잖아요. 아기를 낳아보니까 더 잘 알겠더라고요. 아기를 낳고 기르면서 무슨 결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루하루의 과정이 재미없으면 그 인생은 재미없는 인생이겠죠.”

- ‘피아노 치는 변호사’ 책을 낸 것이 2005년이었죠? 그때만 해도 ‘이타적 싱글’로 살겠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어느새 아기엄마가 되셨네요?

“하하! 사람들이 그래요. ‘넌 혼자 광야에서 기타 치면서 상록수를 부르며 살 줄 알았다’고요. 전 그런 약속한 적 없거든요?”

박변호사는 2006년 말 같은 직업을 가진 김영진 씨와 결혼했다. 처음엔 일로 만났지만 딱 눈이 맞아 관계가 급진전됐다. ‘혹시 재판 때 상대 변호사였냐?’고 하니 그건 아니란다. 남편은 미국 변호사라 관할 자체가 다르다.

- 음악과 법학이 관련이 좀 있습니까? 하긴 외국에서는 법학박사 출신 지휘자도 종종 볼 수가 있긴 합니다만.

“법대 지도교수님이셨던 김재형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음악적 감수성은 법학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아주 서툰 예를 들어볼까요? 피아노를 처음 연습할 땐 메트로놈을 놓고 맞춰가며 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올라가면 끄고 완급을 자기가 조절하죠. 듣는 사람은 모르지만 사실 메트로놈 맞춰놓으면 하나도 안 맞거든요? 하지만 청중은 아주 편안하게 듣죠. 법도 비슷해요. 이런 경우는 이렇다, 저런 경우는 저렇다, 이렇게 하면 징역 2년, 저러면 1000만원 이하 벌금 … 딱딱 나와 있잖아요. 죄형법정주의. 법에서 한 치라도 어긋나면 잘못된 수사, 재판이 되죠. 그런데 법을 적용할 땐 탄력적이어야 해요. 미국인 교수님이 미국의 예를 드셨는데요. 지하철에 개를 데리고 타면 불법이죠?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맹도견을 데리고 타는 건 어떻게 하죠? 법적으로는 막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이걸 가지고 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 알 듯 말 듯한 비유로군요.

“하하! 쉬운 비유도 있어요. 음악도 법도 엉덩이가 무거워야 잘 할 수 있다. 잘 못하면 뒤통수 때리는 것도 비슷하죠. 하하하!”

박변호사는 잘 웃었다. 선해 보이는 웃음이다.

- 박변호사께서는 아무래도 다른 변호사에 비해 일을 할 때에도 인간적인 ‘온도’가 높을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의뢰인의 말을 잘 듣는 편이라는 정도? 한 눈에도 사건이 안 되는 케이스인데, 어쩔 수 없이 의뢰인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기자님도 그렇죠? 기사를 써야 하는데 상대방은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 하고, 그래도 들어야 하는 때(물론 있죠). 그럴 땐 상담가처럼 그냥 포기하고 들어요. 의뢰인이 말 하는 걸로 80%가 풀린다면 그게 어디에요?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었는데, 2∼3년 지나서 연락이 오셨어요. 재판을 하시겠다고. 시효가 한 달밖에 안 남아 급히 소장을 제출하고 가슴을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어요. 사실 기대도 안 했는데. 이런 사례는 변호사라면 다들 있을 거예요. 저뿐만 아니고.”

- 책은 어떻게 해서 쓰시게 된 거죠?

“언젠가는 낸다 … 라고 생각했어요. 시기만 결정을 못했죠. 그러니 제 고시원 방 사진도 찍어놨겠죠? 문득 찍어 놓고 싶어서 엄마한테 오실 때 카메라 좀 가져오시라고 했어요. 엄마가 ‘뭐하는 거냐? 낼 모레 시험인 애가!’하시더군요. 전 그런 식으로 ‘지푸라기’를 갖고 있는 게 많아요. 인연의 끈을 남겨두는 거죠. 혹시 모를 내일을 위해서.”

책상 하나 놓으면 꽉 차는 비좁은 방안을 포스트잇으로(심지어 천정까지!) 가득 메운 박변호사의 고시방 사진은 네티즌들 사이에 꽤 화제가 됐었다. 서울 음대 졸업을 코앞에 두고 교내 농협에 계좌를 만든 것도 비슷한 경우다. ‘언젠가 다른 공부를 하러 다시 들어오고 싶다’는 마음에 계좌를 텄는데, 결국 씨가 되어 법대를 다시 다녔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을 두 번이나 다녔고,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우문이지만,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이 있습니까?

“시험은 그 시험의 특성에 맞게 준비를 해야죠. 가끔 고시생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어요. 시험과 솔직하게 1-1로 대면을 하라고요. 수험생이 제일 보기 싫어하는 게 뭔지 아세요? 기출문제예요. 자기가 시험장에서 본 문제죠. 자신을 냉정하게 시험이라는 도마 위에 얹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내 민법의 기본실력이 뭔지, 형법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처음엔 아프지만, 곧 올라갈 일만 남게 되죠.”

- 시험을 마치 콩쿠르 준비하듯 하신 것 같습니다만?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 암 투병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렇게 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까봐. 이대로 없어져버리든, 병이 낫든, 지금의 고통이 아무 의미가 없을까봐. 고통의 이유는 어차피 누구도 모르잖아요? 이유 없는 건 그렇다치자. 하지만 의미까지 없다면? 참기 어렵죠. 아기를 낳을 때 그렇게 아파도 의미가 있으니까 견딜 수 있는 거잖아요. 물을 데도 없고, 마치 답 없는 시험문제 같죠. 세상에 이렇게 답이 없는 문제가 있나 … 싶었죠.”

- 변호사 일을 하면서 상처받는 일도 많겠죠?

“소송이 원래 다 그래요. 여긴 사람들이 문을 들어설 때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서 오는 거니까, 즐거운 사람이 아무도 없죠. 어떻게 보면 변호사 사무실은 마치 병원 같아요. 모두 한결같이 ‘나는 대한민국의 법을 믿어요’하지만 현실은 꼭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일은 이미 다 잘못 되어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일이 쉽지는 않아요.”

- 훗날 하늘나라에 가시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하! 조크시죠? (손가락으로 X자를 그리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죠. 과거가 없다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없었을 테니까. 피아노다 변호사다 이런 것 말고, 순수한 제 자체의 모습 말이죠. 아마도 … ‘재미있었니?’라고 묻지 않으실까요? 제 대답은 ‘네! 재미 있었어요’가 되겠죠. 그럴 거예요.”

전반부에 다 살아버린 네 개의 악장. 그러나 박지영 변호사의 연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자신의 책 제목도 ‘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라고 지었다. 박변호사의 다음 곡이 궁금했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피아노 치는 변호사’가 언젠가 ‘변호하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냐구요. 물론 그건 손가락 근육상 불가능한 일이죠. 제가 원했든 아니든 ‘피아노 치는 변호사’가 되었다면, 이 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부지런히 찾아서 해야죠.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연주를 포기해서는 안 되죠. 내가 포기하는 순간, 연주는 끝나고 음악은 멈추게 되니까.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죠. 나의 다음 노래는 …”

박지영 변호사는 눈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비가 멈춘 거리 위로,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은가루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박지영 변호사…?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다녔다. 19세에 임파선 암에 걸리면서 어둡고 끝을 알 수 없는 긴 투병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정신적 고통, 육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항암치료를 견디며 병마와 투쟁한 끝에 서울음대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 현재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학생 시절부터 기독교 선교단체 한시미션을 통해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문화공간 ‘다해원’의 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피아노치는 변호사 Next’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베스트셀러였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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