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전문가 아닌 동네 의사 말에 의존”

  • 입력 2008년 7월 15일 02시 51분


■ 정지민씨, 오늘 MBC ‘해명방송’ 앞두고 다시 반박 글

빈슨 주치의 “가정醫일 뿐 광우병 전문가로 볼 수 없다”

美현지 보도 “대다수 언론 CJD - vCJD 가능성 함께 보도”

오역 논란 “빈슨 어머니는 CJD - vCJD 병명 혼동 안해”

《MBC ‘PD수첩’의 의도적 왜곡 논란을 제기한 번역가 정지민 씨가 15일 PD수첩의 ‘해명방송’(PD수첩 왜곡 논란, 그 진실을 말하다)을 앞두고 제작진의 기존 주장을 다시 반박하는 글을 14일 자신의 카페(cafe.naver.com/karamasova)에 비공개로 올렸다. 본보가 입수한 이 글에서 정 씨는 “취재 자료의 상당 부분의 내용을 아는 (내) 입장에서 보면 15일 해명 방송은 핵심적 반박이 되지 못할 것”이라며 “수사 중인 문제에 대해 (해명)방송까지 하면서 또 편집한 것에 불과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왜곡에 대한 반증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정 씨는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 △(PD수첩의 문제가) 사소한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자신이 미국 취재자료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어 (PD수첩의 방영 내용이) 왜곡임을 논할 수 있다는 점 △PD수첩이 왜곡을 반증하고 싶다면 자료 제출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정 씨는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말한 CJD(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는 vCJD(인간광우병)가 아니라 CJD로 번역해야 맥락상 맞다”며 “당시 빈슨의 사망 원인에 대해 미국 현지 방송이나 신문의 대다수가 CJD와 vCJD의 가능성을 함께 언급했는데도 PD수첩은 vCJD만 다뤘고 PD수첩이 ‘빈슨에게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내렸던 의사’라고 한 사람은 동네 가정의여서 vCJD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 씨는 PD수첩 제작진이 이미 번역된 취재 자료의 의미를 알면서도 내용을 완전히 바꿔 내보낸 것은 오역이 아니라 의미 왜곡이라고 다시 한 번 지적했다.

아래는 쟁점 별로 본 정 씨의 반박이다.

▽빈슨 어머니의 인터뷰 중 오역 논란=PD수첩은 빈슨의 어머니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딸의 사인을 CJD라고 말한 것을 vCJD(인간광우병)로 고친 것은 빈슨의 어머니가 두 가지 용어를 헷갈려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PD수첩 자료 중에는 빈슨의 어머니가 “우리는 CJD에 대해서, 그리고 vCJD에 대해서 알아봐야 했다(We had to find out about CJD and about the variant)”고 말한 대목이 있다. 이 발언을 보면 어머니가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무시하고 빈슨의 어머니가 vCJD만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빈슨의 어머니는 MRI 얘기가 나올 때마다 CJD라고 말했다.

빈슨의 어머니는 의사에게 들은 인간광우병 얘기를 PD수첩 측에 여러 차례 말했기 때문에 만약 PD수첩이 vCJD를 언급하고 싶었다면 그 부분을 자막 변경 없이 발췌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PD수첩은 MRI와 vCJD를 연결시키고 싶어 번역을 바꾼 것이다.

PD수첩이 15일 방송에서 빈슨 어머니의 인터뷰를 추가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vCJD를 언급한 부분만 쓴다면 또 다른 거짓이 될 것이다.

▽CJD를 배제한 것은 큰 문제=PD수첩은 15일 vCJD를 거론하는 미국 뉴스를 인용해 왜곡 논란의 진실을 밝힌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또 다른 왜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러 사람이 CJD와 vCJD를 논할 때 어떤 사람이 권위가 있는지 따져 보도해야 한다. PD수첩은 미국 버지니아 보건당국 보도자료의 결론이 “vCJD일 가능성에 대한 일반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공보건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현지 보도 중 vCJD를 먼저 언급한 경우에도 뒤에는 CJD의 가능성을 덧붙이고 있다. 어떤 뉴스를 봐도 사인을 vCJD로만 봐도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힘들다. PD수첩이 현지의 한 방송에서 CJD를 언급했기 때문에 vCJD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내가 본 취재자료에선 vCJD만 언급한 뉴스를 보지 못했다.

PD수첩이 15일 해명에서 vCJD만 거론하는 미국 뉴스를 내보내도 결국엔 당시 미국 뉴스 중 극히 일부만 베꼈고 이를 보건당국의 견해보다 중시했다는 것밖에는 입증할 수 없다.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 반영했는가=PD수첩이 ‘아레사 빈슨에게 인간광우병으로 의심 진단을 내렸던 의사’라고 소개한 의사 바롯 씨는 동네 가정의에 불과하다. 그는 보건당국 관계자도, 빈슨의 위장 우회 시술을 한 메리뷰 병원 관계자도 아니었으며 빈슨의 어머니가 거론한 전문의도 아니었다. 동네 주치의 중 CJD와 vCJD를 진단하고 권위를 갖고 언급할 의사가 몇이나 될까. PD수첩이 그의 말에 의존해 사인을 vCJD로 봐도 좋다고 판단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빈슨의 점진적 증상을 제외시킨 이유는 무엇인가=PD수첩은 빈슨의 사인으로 CJD를 제외해도 좋을 만큼 가능성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취재자료의 상당 부분을 본 내 처지에선 빈슨의 어머니는 물론 전문가 역시 vCJD를 유일한 사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PD수첩은 빈슨을 최대한 vCJD 환자로 비추기 위해 그녀가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안보이고 걷지 못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PD수첩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은 CJD의 가능성을 누락시키기 위해 빈슨이 위장 우회 시술을 받았다는 것과 그 뒤의 점진적 증상도 누락했다. 이는 특별한 의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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