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한 사람의 천재가 100명의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일까.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월·E’ 등으로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연 픽사(Pixar)의 애드 캣멀 공동창업자 겸 회장은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한다. 그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신호에 ‘픽사의 성공 요인은 집단 창의성에 있다’는 주제의 글을 기고했다. 집단 창의성이란 재능 있는 인재들이 모여 협업을 통해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7호(9월 9일 발행)는 캣멀 회장의 기고 전문을 번역해 소개할 예정이다.
○ 영화는 집단적 창의성의 산물
픽사가 집단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은 영화가 수만 개의 아이디어가 합쳐져 만들어지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캣멀 회장은 “창의력 있는 결과물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200∼250명으로 이뤄진 제작팀이 4∼5년에 걸쳐 머리를 맞대고 숱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창의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 2’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인재와, 이들이 협력해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1995년 ‘토이 스토리’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픽사는 이듬해 ‘벅스 라이프’와 ‘토이 스토리 2’를 동시에 제작하면서 위기에 부닥쳤다. ‘토이 스토리’ 속편은 훌륭한 초기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작업 진행이 지지부진했고 감독과 제작자들 사이에 갈등까지 생겼다.
픽사는 먼저 제작을 마친 ‘벅스 라이프’ 팀을 투입했다. 이들은 뛰어난 팀워크와 실력을 갖춘 최정예 팀이었다. ‘벅스 라이프’ 팀은 지지부진한 스토리를 생동감 있는 것으로 바꿔놓으며 좌초 위기에 몰렸던 ‘토이 스토리 2’를 살려냈다. 캣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팀에 훌륭한 아이디어를 던져 주면 팀원들이 그 아이디어를 망쳐버릴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아이디어를 뛰어난 팀에 전해 주었을 때는 별 볼일 없는 아이디어가 히트작으로 재탄생한다.”
○ ‘두뇌위원회’를 만들다
픽사는 이후 창의적 인재들이 함께 최고의 영화를 창조해 낼 수 있는 ‘특별한 환경’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구체화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토이 스토리 2’ 제작 때 만들어진 ‘두뇌위원회(the Brain Trust)’다. 이 위원회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픽사의 집단 창의성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두뇌위원회는 ‘토이 스토리’를 만든 존 라세티 등 경험 많은 감독 아홉 명으로 구성돼 있다. 감독과 제작자는 도움이 필요할 때 두뇌위원회를 소집해 현재 진척 상황을 보여준다. 회의 참석자들은 약 2시간 동안 영화를 좀 더 괜찮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난상 토론을 벌인다. 두뇌위원회에 이어 제작팀은 위원회의 조언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회의를 한다. 위원회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팀원들의 결정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제작팀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호받으면서 언제라도 편안하게 위원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집단 창의성과 관련한 또 다른 제도적 장치는 ‘일일 회의’다. 이 회의에서는 픽사의 모든 부서와 직원들이 모여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을 보며 동료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이는 이전에 디즈니에서 일부 고위 간부만이 영화의 진척 정도를 살펴보는 회의에 참석한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일일 회의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제작 담당 스태프들이 진행 중인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을 극복할 수 있다. 둘째, 일일 회의를 진행하는 감독이나 제작 지휘부가 모든 직원에게 동시에 중요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셋째, 참가자들이 회의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 한 작품에서 가장 창의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다른 참가자들을 자극하게 되고, 좀 더 뛰어난 작품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 팀워크 강화를 위한 운영 원칙
픽사는 집단 창의성을 강화하기 위해 부서 간의 장벽을 허물고, 내부는 물론 외부와의 소통까지 원활하게 하는 독특한 운영 원칙도 가지고 있다. 픽사는 특히 예술과 기술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기울인다.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운영 원칙은 크게 다음 3가지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는 어떤 부서의 구성원이건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이 필요할 경우 ‘적합한’ 경로를 통하지 않고서도 다른 부서의 구성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직원들이 상부의 허락 없이 직접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픽사는 부서나 직급에 관계없이 사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제작 중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작성해 제작팀 리더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학계에서 일어나는 혁신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픽사는 사내의 인력들에게 연구 내용을 출판하고 관련 업계의 콘퍼런스에 참여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학계와의 연계는 뛰어난 인재를 유치할 수 있게 해주며, 사내에서 인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수 있다.
한편 픽사의 사옥도 서로 다른 부서 직원들의 교류 증진에 도움을 준다. 픽사 사옥은 기능 중심이 아니라, 직원들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사옥 중간에는 카페테리아, 회의실, 화장실, 우편함 등이 있는 거대한 홀이 자리해 직원들은 일과 중 여러 차례 다른 부서 사람들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직원들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은 설명하기 힘들 만큼 값진 결과로 이어진다.
캣멀 회장은 마지막으로 “집단적 창의성이라는 최고의 성공 요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좋은 문화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더십의 첫 번째 도구는 작품에 대한 사후 점검이 ‘자화자찬’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지속적인 개선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캣멀 회장은 이를 위해 각 제작팀에 ‘다시 반복하고 싶은 것’ 다섯 가지와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 다섯 가지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한다.
또 다른 도구는 픽사가 새로 영입한 젊은 인재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캣멀 회장은 “나는 신규 채용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그동안 픽사가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 강연을 한다. 이는 그동안의 성공 때문에 ‘픽사가 하는 일은 모두 옳다’는 잘못된 생각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국내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6호(9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Future Wave/스타벅스여, ‘덧셈의 세상’은 갔다
감성 마케팅으로 전 세계 기업의 벤치마크 대상이던 스타벅스가 최근 위기의 징후를 잇달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스타벅스는 최고의 커피와 경험을 제공한다는 초심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정보기술(IT) 서비스로부터 잠시 벗어나고픈 트렌드 리더들의 ‘뺄셈’ 취향을 간파하지 못했다.
▼Guru Interview/로버트 캐플런 하버드대 교수
기업 성과측정 도구인 균형성과표(BSC)를 창안한 로버트 캐플런 하버드대 교수는 DBR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에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직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전략의 성과를 검토해야 하며, 모든 조직에서 BSC를 성공시키는 핵심 요소는 리더십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광고 효과, 이제 뇌영상으로 검증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광고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장치를 이용하면 기업들의 광고 효과를 직접 측정할 수 있다. 스포츠카를 본 남성들의 뇌를 관찰하면 사회적 지위나 보상과 관련된 영역이 눈에 띄게 활성화된다. 이는 스포츠카 광고에서 남성의 성취욕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개별 브랜드 vs 기업 브랜드 어느 쪽 힘이 셀까?
세계 각지의 호텔들을 하나의 기업 브랜드로 통합해 알릴 것인가, 개별 브랜드로 마케팅할 것인가. 규모의 효율성을 살려 하나의 명성으로 고객을 유인할지 지역과 문화를 반영해 개별 브랜드의 개성을 살릴 것인지에 대해 4명의 전문가가 해답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