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잘 살렸다” “재미 떨어진다” 평가 엇갈려
일본 영화 ‘20세기 소년-제1장 강림’(11일 개봉)은 7월 개봉한 중국 영화 ‘적벽대전 1부-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닮았다.
‘20세기 소년…’은 2009년 가을까지 차례로 개봉할 3부작 시리즈의 첫 편이다. 그런 까닭에 시원한 마무리를 보여주지 않고 흥미진진해질 무렵 2편으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즈음 끝나버린 ‘적벽대전…’ 같다.
원작은 우라사와 나오키(48)가 그린 같은 제목의 만화다. 1999년부터 8년간 만화잡지 ‘빅 코믹 스피리츠’에 연재하며 전 24권으로 1969∼2018년의 세월을 오가는 복잡한 이야기를 담았다. 단행본은 세계 12개국에서 2000만 부 이상, 한국에서만 80만 부 이상 팔렸다.
감독 쓰쓰미 유키히코는 만화 속 장면을 동영상으로 충실히 옮기는 데 치중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 ‘내일의 기억’(2006년) 등 로맨스 영화에서 보여준 섬세한 연출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용도 원작과 달라진 부분이 거의 없다. 편의점 직원 켄지(가라사와 도시아키)가 자신의 어릴 적 공상을 훔쳐내 실천한 남자와 싸우는 이야기다. 켄지는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연쇄 사고가, 어렸을 때 자신이 꾸며낸 ‘예언의 서’와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수수께끼의 적과 맞선다. 이번 1편은 거대로봇과의 전투를 그린 만화 8권까지의 내용이다.
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는 “1부만 봤기 때문에 단정하기 어렵지만 워낙 복잡한 원작의 이야기를 재구성 없이 그대로 옮기다 보니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총제작비 600억 원에 300여 명이 출연한 대작이지만 영상 스케일도 기대에 못 미친다. 도쿄 국회의사당 폭파 장면, 살인 바이러스를 뿌리는 거대로봇 등은 만화의 그림보다 빈약하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원작에서도 거대로봇은 허술했다”며 “블록버스터라기보다 원작을 소박하게 영상화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 팬들이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만화 속의 주제가 ‘켄지의 노래’다.
“해가 저물고 어디서인지 카레 냄새가 난다…. 얼마만큼 걸으면 집에 다다를 수 있을까….”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노래는 만화 속의 가사에 우라사와가 직접 곡을 붙였다. 주연 가라사와가 부른 이 노래는 우라사와가 좋아하는 밥 딜런과 존 레넌의 곡처럼 담담하고 경쾌하다.
외모가 만화 캐릭터와 빼닮은 배우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러브레터’의 도요카와 에쓰시, ‘성월동화’의 도키와 다카코 등 일본 영화의 스타들이 연기를 펼친다.
개봉 전 시사를 본 만화 팬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원작 만화의 주요 장면을 편집했을 뿐 재미도 철학도 스펙터클도 잃었다”(btheme)는 혹평과 “원작을 잘 살려 다음 편도 기대된다”(suicide79)는 호평이 맞서고 있다. 2편은 2009년 1월, 3편은 2009년 가을에 개봉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