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이나 도박에는 취미가 없어요. 그런 제가 요즘 이걸 갖고 다니는데, 한번 보실래요.”
13일 경기 고양시 일산 SBS 탄현제작센터에서 만난 장혁(32·사진)이 대뜸 두툼한 파일 뭉치부터 내밀었다. 카드 룰 등 도박 게임의 룰이 적혀 있었다.
16일 처음 방영되는 SBS 드라마 ‘타짜’(월 화 오후 9시 55분)에서 고니 역을 맡은 그는 “어제 고스톱 치는 장면만 9시간을 찍었다”고 말했다. 도박 용어가 입에 붙지 않았다며 인터뷰 중에도 시선을 슬쩍 대본으로 옮긴다.
“도박 용어 중에는 건설업에서 쓰는 용어가 많더라고요. ‘컨설팅’을 하네, ‘설계’를 하네. ‘하우스’의 손님들은 ‘시공자’라고 하고, 업주에게 ‘크레디트’를 얻은 시공자들은 ‘분양’을 받게 되죠.”
극중 고니는 친구 영민(김민준)의 할머니 장례비를 마련하려 도박판에 뛰어든다. 우연히 발을 들여놓은 세계에서 도망치려는 순간, 고니는 너무 깊이 발을 들여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니에게 도박과 같은 게 제겐 연기인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는 기계체조를 했는데 포기했고 그러다 고3 때 연극반 친구를 따라간 것이 그만…. 비유를 하면 커피 같은 거예요. 남들이 마시기에 한번 마셔봤는데 어느덧 커피에 대한 취향이 분명해지고, 그러다 슬슬 중독되는 거죠.”
‘낙장불입’(한번 내놓은 패는 다시 물리지 못한다는 뜻)이라는 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연예계 생활도 올해 12년째다. 그는 출연작을 DVD에 담아 시간이 날 때마다 본다. 처음으로 시청률에서 쓴잔을 마신 드라마 ‘불한당’에 대해서는 “실패해서 더 좋아하게 된 드라마”라고 말한다.
“처음엔 그렇게 낮은 시청률을 접하고 ‘이건 뭐지’ 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부담이 사라져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해본 것 같아요. 배우 하면서 처음이었어요. 시청자가 아닌 내가 만족할 수 있었던 연기는요.”
6월 결혼한 그는 요즘 8개월 된 아들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갑작스럽게 생긴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역할 덕분에,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폭도 넓어진 듯하다.
“아들을 처음 안았을 때 막연했죠. 아버지도 이러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아버지를 볼 때마다 찡해져요. 그냥 지나쳤던 하나하나의 사물을 그것, 이것, 저것으로 분별하게 되고요. 이런 걸 화투 용어로 ‘일타쌍피(一打雙皮)’라고 하는 거겠죠? 아들도 얻고 배우로서 시각도 넓어졌으니까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