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MBC-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한 장면. 악보를 볼 줄 모르는 트럼펫 주자 강건우(장근석)가 “나는 그냥 외워서 연주한다”고 하자 독불장군 지휘자 강마에(김명민)가 피아노 앞에 앉아 복잡한 프레이즈를 연주해 보인 뒤 강건우에게 “연주해 봐”라고 한다.
강건우가 완벽하게 따라 연주해내자 까칠한 성미의 강마에가 내뱉는다.
“돼지에게 진주로군.”
드라마 속에서 보여 준 강건우의 능력은 그가 ‘절대음감’의 소유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절대음감이란 어떤 음을 듣고 그 음높이를 즉석에서 판별할 수 있는 청각능력을 말한다.
당연하지만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생물학자 바쳄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전문 음악가 중에서도 절대음악을 지닌 사람은 5%도 안 된다고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어떤 힌트도 없이 아무 음이나 들어도 정확히 계명을 맞출 수 있고, 여기에 나아가 아무리 복잡한 구성의 음악이라도 즉석에서 채보(악보에 음표를 기록하는 일)가 가능해야 절대음감의 ‘지존’에 오를 수 있다.
궁극의 절대음감을 지닌 사람들은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고도 정확히 계이름을 맞힐 수 있을 정도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음악교수였던 프레드릭 위슬리 교수는 자신의 다섯 살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는 G키로 코를 푸셨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G였지만 나중에는 D로 바뀌었지요. 그때 시계의 차임벨이 B마이너로 울렸습니다.”
이쯤 되면 절대음감을 지니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술 먹고 늦게 들어간 날, 그냥 들어주기도 괴로운 아내의 바가지 소리가 ‘Dm에서 A, 다시 G로 간 뒤 C로 변화’하는 식으로 들린다면 그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절대음감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음악가가 되리란 법도 없다. 물론 세계적인 거장들은 대부분 절대음감의 소유자들이다. 음악사상 불후의 천재 모차르트, 베토벤을 비롯해 지휘자 토스카니니, 클라우디오 아바도, 게오르그 솔티, 로린 마젤 등이 대부분 절대음감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로베르트 슈만과 리하르트 바그너처럼 절대음감이 없었던 사람들도 있다. 절대음감. 거장이 되기 위한 ‘절대적’ 요건만은 아닌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