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제목의 역설

  • 입력 2008년 9월 25일 08시 19분


빛이 된 빚, 그래서 나이스 데이!

빚 받으러 나간, 그것도 옛 애인에게…. 살면서 가장 끔찍한 하루가 왜 ‘멋진 하루’가 됐을까?

사채, 채무가 화제다. 빚 때문에 세상을 떠나 안타깝게 했고, 채무와 관련된 악성루머에 시달려 소송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작은 액수일지도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거액일 수 있는 빚 350만원 때문에 최고의 ‘멋진 하루’를 보낸 이야기도 있다.

영화 ‘멋진 하루’의 시작은 “돈 갚아” 한 마디. 그리고 이 ‘돈 갚아’는 영화 마지막까지 그들이 함께 하는 이유, 서로 소통하는 통로, 그리고 세상에 대한 패배자들의 외침이다.

자상한 설명은 없지만 추정하건데 희수(전도연)는 30대 노처녀 백조다. 돈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 1년 전 헤어진 병운(하정우)에게 빌려준 350만원이 갑자기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나 보다. 폭발 직전 그녀는 돈을 받으러 나선다. 찾아간 곳은 병운이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경마장. 병운은 희수를 반갑게 맞지만 갚을 돈은 없다. “오늘 꼭 갚아!”라고 윽박지르는 희수에게 병운은 ‘돌려 막기’를 제안한다. “걱정 마 내가 오늘 안으로 다 해결할게.”

덥석 희수의 차에 오른 병운은 전화를 돌려대며 돈을 꾸러 다닌다. 희수는 어이가 없다. 하지만 오늘 안에 돈을 다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색한 동행을 선택한다.

병운의 빚내서 빚 갚기 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돈 많은 여성 사업가,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술집 아가씨, 우연히 만난 대학후배, 사촌, 스키 강사 시절 제자, 이혼 후 힘들에 아이를 키우는 초등학교 동창까지.

희수는 처음엔 기가 막혔다. 호스티스에게 외모가 별로라니, 독하다니 별 소리도 다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진실된 마음으로 선뜻 지갑을 열고 있다는 사실에서 점점 닫힌 희수의 마음도 열린다.

희수가 받으러 나온 건 돈이 전부였을까? 병운은 어찌됐건 희수에게 350만원을 모두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아픈 과거까지 들키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350만원도 끝이 보인다.

말도 안 될 것 같던 빚 돌려 갚기는 절망에 쌓여있던 희수에게 따뜻한 온정과 희망을 준다. 그리고 병운이 순진한 미소와 함께 던진 한 마디

“원래 인생이 그런 거잖아. 내가 있을 땐 없는 사람 돕고, 내가 없을 땐 도움도 받고.”

빚 받으러 나온 짜증 절정의 날을 최고의 멋진 하루로 바꿔 놨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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