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게이야.”
“그게 뭐 어쨌다고.”
케이크 가게의 귀공자 사장 진혁(주지훈)의 경고에 견습점원 기범(유아인)이 건네는 대꾸는 동성애에 대한 ‘앤티크’의 시선을 요약한다. 민규동 감독은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를 뿐 나쁜 게 아니다’라고, 심각하거나 어둡지 않은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그 사람’이 아주 먼 곳에서라도 찾아오고 싶어질 만큼 맛있는 케이크 가게를 만들겠다”는 진혁. 고등학교 때 그를 짝사랑했던 선우를 고용해 낸 가게 ‘앤티크’에 천방지축 기범과 어수룩한 수영(최지호)이 찾아온다.
미끈한 외모의 사내들을 내세운 뻔한 소녀 취향 드라마 같은 시작. 하지만 초반부의 어색한 특수효과를 참아내면 흥미진진한 ‘감독의 배신’이 전개된다. 진혁이 독백하는 ‘그 사람’은 평범한 예상처럼 ‘그리운 옛 연인’일까. 감독은 여기서부터 달콤한 꽃미남 로맨틱 드라마를 기대하는 관객의 의표를 찌른다.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민 감독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는 마음의 상처를 차분히 풀어냈다. ‘앤티크’에서 그가 내미는 케이크 조각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잠깐 잊게 하는 작은 위로다. ‘동성애 영화’라는 선입견은 그런 이야기 흐름 속에 묻혀 희미해진다.
깊은 입맞춤 등 동성 간의 진한 스킨십 장면이 덜 자극적인 것은 잘 정돈된 이야기 덕분이다. ‘로드 무비’의 처절한 베드신과 비교할 때 ‘앤티크’의 베드신은 그냥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일상처럼 담담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동성애 영화는 대개 어두침침한 잿빛 필름이었다. 동성애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낸 ‘내일로 흐르는 강’(1996년)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 얻은 마음의 상처가 동성애의 원인이 된 것으로 그렸다.
그 뒤 소외된 성적 소수자의 상처와 슬픔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동성애 여고생이 남긴 이승의 한(恨)은 ‘번지 점프를 하다’(2000년)와 ‘주홍글씨’(2004년)로 이어졌다.
이것은 고(故) 장국영이 ‘패왕별희’(1993년)나 ‘해피투게더’(1997)에서 보여 준 슬픔과 같다. 동성애 취향을 천형(天刑)처럼 본 것. 2005년 ‘왕의 남자’와 2006년 ‘후회하지 않아’도 이런 어둠을 온전히 벗지 못했다.
2008년 ‘앤티크’를 기점으로 이어질 한국영화들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 변화를 일정 부분 반영한다. ‘미인도’, ‘쌍화점’, ‘소년, 소년을 만나다’ 등이 그릴 동성애자는 혐오스러운 별종이 아닌 조금 다른 이웃이다.
하지만 ‘앤티크’ 시사회장에는 아름다운 남자들의 열렬한 키스에 불쾌한 듯한 신음과 헛기침을 터뜨리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앤티크’는 1993년 리안의 ‘결혼피로연’이 중국에 들이민 동성애에 대한 발랄한 시각을 한국에 내놓았다. 그 카드가 어떤 게임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주목! 이 장면▼
빗속 두 남자의 댄스… 움직이는 만화 보는 듯
‘앤티크’는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을 원작으로 했다. 원작자는 일본을 찾아온 감독에게 “기본 설정만 남겨두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재구성하라”고 했다. 하지만 감독은 만화 팬을 위한 서비스를 곳곳에 남겨뒀다. 시사에 참석한 만화 팬들은 선우와 수영의 빗속 댄스 장면에 ‘움직이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며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