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악수를 청해 미안합니다. 촬영 중 다친 오른팔이 아직 다 낫지 않았어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40)는 영화 ‘007 퀀텀 오브 솔러스’(5일 개봉)에서의 난폭한 살인기계 제임스 본드의 모습과 달리 상냥하고 소탈했다.
“바다 위 추격전, 무너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장면 등 격렬한 액션을 거의 모두 직접 했습니다. 아무리 비슷하게 분장해도 관객은 귀신처럼 대역을 알아보거든요. 존경하는 대선배 버스터 키턴과 찰리 채플린도 놀라운 액션 장면을 직접 소화했죠.”
스턴트맨을 마다한 그의 집념은 오기에서 나왔다. 그는 2006년 ‘카지노 로얄’로 처음 본드 역을 맡았을 때 ‘세련된 007이라기엔 외모가 투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터넷에 안티 사이트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가 세계에서 6억 달러 가까운 수입을 거두자 논란이 사라졌다.
이 일을 돌이켜 묻자 차분하던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말을 더듬었다.
“내, 내,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겠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어요. 그저 모든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역대 007 중 그의 역할모델은 숀 코너리였다.
“코너리와 로저 무어 등 역대 007 배우들처럼 이미지가 굳어질까 걱정이 되지만 아직 잠 못 이룰 정도는 아닙니다.”
함께 인터뷰에 참석한 ‘본드 걸’ 올가 쿠릴렌코(29)는 “007이 전편에서 죽은 옛 연인을 잊지 못한 상태여서 로맨스는 없었지만 그 덕분에 개인적 복수에 몰두하는 독립적인 캐릭터가 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쿠릴렌코는 모델 출신 배우다.
쿠릴렌코는 “본드 걸 여배우들이 후속작에서 고생한다지만 승승장구한 에바 그린과 핼리 베리도 있다”며 “본드 걸을 ‘인생 최고의 경험’으로 접어두고 액션 없는 차기작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