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는 ‘망종’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은 중국 교포 장률 감독의 신작. 윤진서는 “처음부터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감독이 대본을 주지도 않았다. 제 대사는 모두 직접 써서 연기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영화 시나리오는 구체적인 상황 설정과 자세한 대사가 있어 배우들에게 촬영지침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률 감독은 윤진서에게 그날 촬영의 설정과 배경만 설명했을 뿐 그녀가 할 대사를 맡겨버렸다.
윤진서는 “중국교포인 감독님이 우리말이 서툴다며 대사를 통째로 맡겨 처음에는 부담도 컸다. 다른 영화촬영보다 두 배 세 배 힘들었지만 스스로 대사를 쓰고 연기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장률 감독은 ‘올드보이’에서 윤진서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보고 출연을 먼저 제의했다. 윤진서는 글 솜씨가 남다르다고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에도 각본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리’는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남아있는 이리역 폭발사고의 상처를 그린 영화다. 윤진서는 폭발 후유증으로 지능이 조금 모자란 인물 진서를 연기하며 직접 쓴 함축적인 대사로 영화를 이끌었다. 장률 감독은 그녀의 이름을 여주인공 이름으로 쓰며 깊은 신뢰를 보였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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