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기자, 고민 해결 인터뷰
각본없이 진행… “NG도 없어요”
“지환 씨, 유독 긴장돼 보여요. 이제 마이크 건네주시고 슛 들어갈까요.”(유용석 PD)
“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시다시피 전 키가 150cm예요. 남자치곤 아주 작죠. 호빗족 난쟁이 꼬맹이… 다 제 별명이에요. 형이 생각하기에도 제가 키 크는 수술을 받아야 할까요.”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반 서울 서초구 우면동 한 카페 구석에서는 마이크를 든 남자가 옆의 남자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오늘의 취재자는 오지환(26) 씨. 키 크는 수술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는 그는 6개월 전 키 크는 수술을 받았다는 취재원을 섭외해 마이크를 갖다댔다.
SBS ‘인터뷰게임’(화 오후 8시 50분)은 시청자들이 기자가 돼 주위 사람을 인터뷰하는 휴먼다큐 프로그램. 이들의 질문은 실제 기자들과 달리 ‘개인적’이다. ‘마흔다섯 살 우리 엄마, 왜 가수 손호영을 좋아할까’ ‘방안에서 뱀을 키우는 남편 어떻게 해야 할까’ ‘무녀의 길 계속 가야 할까’ ‘236kg의 래퍼, 살을 빼야 할까’ 등 다른 이들에겐 사소해 보여도 자신에겐 심각한 고민이 이 프로그램의 소재다.
질문 준비부터 취재원 섭외까지 모두 취재자의 몫이다. 오 씨는 “작가가 주는 대본대로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런 각본이 없더라”며 “내 마음대로 물어보면 되니 각본 자체가 필요 없는 100% 리얼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오 씨는 일주일 동안 부모님과 동생 친구를 비롯해 단신(短身) 연예인으로 알려진 이수근, 하박 씨 등 10명을 만났다. 그중 가장 까다로운 취재원은 어머니였다.
“머리가 굵어진 뒤 어머니께 속마음을 얘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태어나 처음으로 ‘난 왜 이렇게 작게 태어났나’하며 키 때문에 겪었던 서러움을 다 토해냈죠. 사람과 사람이 진정한 대화를 나눈다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요. 카메라와 마이크만 있어도 가능한 일이었어요.”
각본뿐 아니라 이 프로그램에는 NG도, 화려한 카메라 워크도 없다. 취재자와 취재원을 따라다니는 6mm 카메라 두 대는 담담히 두 사람을 비출 뿐이다. 유 PD는 “카메라를 의식해 질문자와 취재원이 연출을 하겠다고 하면 카메라만 고정시켜 둔 채 제작진은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키 크는 수술이 얼마나 아픈지, 후유증은 없는지 등을 물으며 1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가 끝났다. 이렇게 해서 쌓인 60분짜리 테이프만 30∼40개. 이것이 방송에서는 편집을 통해 20분으로 압축돼 나간다.
“뼈를 깎는 고통을 2년간 감수해도 10cm가 최대치”라는 취재원의 말에 오 씨는 마이크에 대고 한숨을 푹 쉰다. 그의 절박한 말은 프로그램 중간에 내레이션으로 삽입될 예정. “아, 2년 후면 스물여덟 살. 그렇게 희생했는데도 150cm라니 생각하기 무섭다. 숨이 꽉 막힌다.”
아직도 마음을 못 정했다는 그는 다음 취재원인 의사를 만나기 위해 병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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