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영화, 동물, 여행 등 다양한 소재의 TV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이충렬 감독의 영화 데뷔작. 그는 2000년부터 전국을 돌며 주인공 소를 찾다가 2005년 경북 봉화에서 최원균(80) 씨와 그의 늙은 황소를 만났다.
소가 어떻게 장수하게 됐을까 이유를 파헤치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내용이 아니다. 이 감독은 내레이션 없이 담담한 시선으로 세 노구(老軀)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들 각자의 저무는 삶을 필름에 기록했다.
가죽과 뼈만 남은 늙은 소를 부려 밭과 논을 일구고 나무와 꼴을 져 나르는 최 씨. 부인 이삼순(77) 씨의 말대로 얼핏 “말 못할 짐승이라도 못할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투덜거리면서 점심밥을 가져오는 이 씨를 돌아보는 소의 눈빛은 반가운 가족을 반기는 그것이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반복하는 힘으로 오랜 세월 서로 기대 살아온 황소와 최 씨에게 작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수명이 다 됐다”는 수의사에게 욕지기를 하며 외면하는 최 씨의 흰자 많은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사료를 사다 먹이지 않고 새벽마다 일어나 직접 쇠죽을 끓이는 최 씨의 가느다란 팔. 소가 먹고 죽으면 어쩌느냐며 평생 농약을 쓰지 않은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의 넋두리. 워낭소리가 울릴 때마다 소에게 다가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최 씨의 뒷모습. 황소를 오래 살게 한 까닭이 하나둘씩 자연스레 밝혀진다.
어느 겨울날 밤 한번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소의 코뚜레와 워낭을 빼주며 노부부는 “우리 가거든 같이 가면 될 텐데 왜 먼저 가느냐”고 원망을 던진다. 소가 모로 누워 묻힌 무덤에 막걸리를 뿌려주고 앉은 최 씨. “불 떼고 살라고 저렇게 많이 져 나르고 죽었다”는 이 씨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에 담기는 높은 나무더미가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