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눈빛보다 뭉클한 병사의 눈물…우위썬 감독의 ‘적벽대전2’

  • 입력 2009년 1월 20일 03시 00분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은 역사소설의 주인공인 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름 없는 병사들의 뭉클한 사연을 애틋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사진 제공 영화인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은 역사소설의 주인공인 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름 없는 병사들의 뭉클한 사연을 애틋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사진 제공 영화인
“나, 돼지야. 돼지라고!”

“돼지야…. 나 보러 왔구나. 지금도… 목말 타고 싶어?”

받아쓰고 읽어보면 민망할 만큼 유치한 병사들의 대사. 하지만 1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극장에서 열린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22일 개봉) 시사회를 찾은 회사원 김주희(28·여) 씨는 영화 끝부분 이 장면에서 살짝 눈물을 훔쳤다.

우위썬(吳宇森)은 단단한 액션의 껍질 속에 부드러운 낭만을 녹여내는 감독이다. ‘영웅본색2’에서 저우룬파(周潤發)의 품에 안겨 죽어가던 장궈룽(張國榮)의 유언은 걸쭉한 비장미에 가려 낯간지럽게 들리지 않았다. 적벽대전2도 화려하게 펼쳐지는 액션보다 은근히 배어나오는 휴머니즘에 무게중심을 둔 영화다.

그렇다고 전쟁영화의 기본을 잊은 것은 아니다. 전투가 막 시작할 즈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는 비난을 들었던 1편과 달리 40분에 이르는 전투신은 800억 원의 제작비를 실감하게 만든다. 브래드 피트의 ‘트로이’가 개인전의 진수였다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대규모 진법 대결의 백미다.

감독은 화공 장면을 위해 중국 촬영 현장에서 36m 길이의 모형 함선 100여 척을 폭발시켰다. 수십만 조조 군을 삼켜버린 불바다의 재현에 1000명이 넘는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하지만 이야기는 원작 ‘삼국지연의’ 팬에게 익숙한 전쟁영웅담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1편에서 양념처럼 더해졌던 하급 병사들의 이야기가 강조되면서 관우와 장비 등 쟁쟁한 장수들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세금 몇 냥 덜 내기 위해 칼을 집어든 백성들의 사연은 역사책에 화려하게 기록된 전쟁터가 사실은 처절한 살육장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전쟁에 승자는 없다”는 주유(량차오웨이·梁朝偉)의 외침은 바로 감독의 생각. 화려한 특수효과, 장대한 스케일보다 인상적인 것은 역사 속에 잊혀진 무명소졸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남자들의 전쟁에 희생됐던 원작 속 여성 캐릭터도 자의식 강한 인물로 재해석됐다. 제갈량(진청우·金城武)의 심리전 소재에 불과했던 주유의 아내 소교(린즈링·林志玲)는 조조의 공격을 늦추기 위해 혈혈단신 적진으로 뛰어드는 여장부로 나온다. 조조 손권 유비 등 주역들도 관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생기를 찾았다.

화공 한 방에 놀라 도망쳤던 연의 속 조조는 이 영화에 없다. 역사의 추를 짊어진 채 서서히 부패해간 천재의 고뇌가 그려진다. ‘술잔은 노래로 마주해야 하리/우리 삶이 길어야 얼마나 되나(對酒當歌 人生幾何)….’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가 읊은 것으로 알려진 시 ‘단가행(短歌行)’은 병사들의 죽음과 교차 편집돼 기품 있는 뮤직비디오가 됐다.

원작에서 제갈량에게 도전하는 열등감 덩어리로 묘사됐던 주유도 량차오웨이의 매력에 힘입어 ‘훈남’으로 복권됐다. 제갈량은 기이한 도술을 부리는 소설과 달리 탁월한 통찰력으로 세심히 관찰한 자연현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현실적 수재로 빚어졌다.

2시간 21분이 숨 가쁘게 흘러가는 곳곳에 유머도 숨어 있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기억하는 관객은 귀네스 팰트로가 섹시한 매력을 뽐냈던, 빙글빙글 몸통 돌리며 붕대를 벗는 장면의 유쾌한 인용을 볼 수 있다. 15세 이상.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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