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복색과 배경건축물 세트에 고려시대 스타일을 반영하려 한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금욕적인 조선 유교문화가 지배한 오랜 세월 동안 희미하게 잊혀져간 고려의 건축. 그 핵심 키워드는 ‘화려함’이었습니다.
고려 왕궁은 개성 송악산 아래 경사지를 깎아내고 여러 개의 넓은 단을 만든 다음 그 단 위에 전각을 세웠습니다. 궁궐 중앙 회경전 앞 4개의 33단 돌계단은 높이가 5장(약 15m)이 넘어 웅장한 느낌을 자아냈다고 합니다.
정돈된 배치보다 화려한 의장에 치중한 고려 건축은 장식적 요소가 약했던 조선시대 건축과 달랐습니다. 고려 인종 때의 송나라 사신 서긍은 귀국 후에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 왕궁에 대해 “단청으로 칠하고 붉은 구리구슬로 장식해 화려하기 그지없다”고 썼습니다. 유약을 입혀 자기처럼 구워낸 청자기와는 고려 건축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중요한 디테일이었습니다.
궁궐 건물 수는 적었지만 천장이 높고 웅장한 2층 누각이 많았습니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중국을 넘보는 듯한 고려 궁정의 화려함을 불쾌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8대 현종 때 가장 화려했던 고려 왕궁은 오랜 기간에 걸친 몽골 침략으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지난해 말 남북 공동 발굴조사에서 태조 왕건의 신위를 봉안했던 경령전 터가 발굴됐지만 기둥이 섰던 자리의 흔적만 겨우 알 수 있는 허허벌판일 뿐입니다.
호국불교의 영향으로 세워졌던 사찰 건축물 가운데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 고려 건축의 자취를 흐릿하게나마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내 목조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경북 안동시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은 13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최고 목조건물로 꼽히는 경북 영주시 봉황산 기슭의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은 고려 건축의 아름다운 균형미를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부석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됐지만 무량수전과 조사당 건물은 고려 때 만들어졌습니다. 나머지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건축물입니다.
1916년 해체수리작업 때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무량수전은 공민왕 7년(1358년)에 화재를 당해 우왕 2년(1376년)에 재건됐습니다. 하지만 정종 9년(1043년) 중건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건축 유산인 충남 예산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은 충렬왕 34년(1308년)에 세워졌습니다.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은 가운데를 부풀린 배흘림(엔타시스) 양식의 두리기둥을 가졌습니다. 배흘림은 일직선 기둥을 멀리서 봤을 때 가운데가 좁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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