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고의 여인상 지고 여걸형 家母長 떴다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7분


탁월한 수완 -카리스마로 극중에서 주도권 행사

여성 경제활동 증가 -가족내 역학관계 변화 반영

“뇌 의학센터를 띄우려면 그 정도 언론플레이는 당연한 거였어. (자기편을) 버리는 데도 순서가 있는 법이야. 이 친구는 아직 아냐.”

19일 방영된 SBS 수목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한 장면에서 종합병원 부원장인 나혜주(김해숙)가 아들 이선우(신현준)에게 내뱉는 싸늘한 음모다. 원장인 남편은 뇌질환으로 의식불명이다. 병원 내 정치에 능한 나혜주는 뇌 의학센터 건립을 위해 병원 이사들을 상대로 모략을 펴며 드라마 속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

최근 드라마 속에서 ‘나혜주’처럼 탁월한 수완과 정치력을 토대로 기업을 경영하거나 가족 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여걸형 가모장(家母長)’이 등장하고 있다. 단순한 ‘강단형 여성’에서 카리스마로 가족을 장악하는 이 같은 ‘가모장적 캐릭터’는 여성의 사회 참여와 더불어 가족 내에서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 ‘가부장’의 현실을 함께 반영한 것이다.

○ 칼 같은 냉정함을 지닌 ‘드라마 속 가모장’

KBS 수목극 ‘미워도 다시 한 번’의 한명인(최명길)은 별명이 ‘얼음공주’인 미르백화점 회장이다. 명진그룹 집안 막내딸로 부회장인 남편 이정훈(박상원)의 도움을 받아 그룹을 더욱 성장시켰으며 기업 경영이나 집안 문제에서 데릴사위 격인 남편을 좌우하는 실권을 쥐고 있다.

MBC 아침 드라마 ‘하얀 거짓말’의 신정옥(김해숙)은 사리 판단이 분명하고 칼 같은 성격으로 공장 여공에서 수백억 원대 자산가가 된 백화점 회장이다. KBS 월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어머니 강희수(이혜영)도 계열 호텔 체인 최고경영자(CEO)에서 신화그룹 총수에 오른다. 신정옥의 남편은 죽었고, 강희수의 남편은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다.



○ 인고(忍苦)의 여성에서 권력의 여성으로

1970년대 드라마의 대표적 여성 캐릭터는 TBC 일일극 ‘아씨’(1970년)의 주인공 ‘아씨(김희준)’다. 그는 억척스럽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 며느리로, 어떠한 고난도 참아내는 인종(忍從)의 여성을 대변했다. MBC 일일극 ‘새엄마’(1972년)도 새엄마가 시누이와 시동생의 냉대를 꾸준히 참고 견디며 사랑과 희생으로 가족을 돌본다. 1980년대에도 이런 경향은 이어져 KBS 드라마 ‘달빛 가족’(1989년)의 큰 형수(이휘향)는 출판사 부장인 남편 김준호(서인석)를 비롯한 4형제를 너른 품으로 보살피는 캐릭터였다.

1991년 MBC ‘사랑이 뭐길래’(1991년)의 ‘대발이 아버지’(이순재)는 사실상 드라마에서 나오는 ‘마지막 가부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발이 아버지도 전통적인 가족관에 반기를 드는 며느리 지은(하희라)에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MBC ‘아줌마’(2000년)에 와서는 가부장적 집안의 주부 오삼숙(원미경)이 그 굴레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당초 시놉시스에는 바람을 피운 남편이 후회하고 재결합하는 것이었으나 ‘이혼하라’는 시청자의 의견 때문에 이혼으로 끝났다.

1990년대 이후에는 아내의 불륜이 아름답게 묘사된 ‘애인’(1996년), ‘노처녀’의 당당한 매력을 그린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 여성이 아니라 중성적 매력을 가진 은찬(윤은혜)이 등장한 ‘커피프린스 1호점’(2007년) 등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여성의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 강하고 억압적인 어머니가 설득력 가져

최근 등장한 가모장 캐릭터는 가족 내 여성의 지위 향상이 드라마에 반영된 것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실업자 아버지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어머니들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10여 년간 꾸준히 가족 내 역학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이영미 씨는 “여성 가장이 현실에서 늘어났을 뿐 아니라 요즘은 아버지가 돈을 버는 경우에도 재테크를 비롯해 경제권이 어머니의 몫이 된 경우가 많으며 아이들에게도 어머니가 실질적인 권력자로 여겨진다”며 “강하고 억압적인 어머니형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 속 남편은 죽거나 사고로 누워 있다는 설정으로 가모장들이 아들을 후계자로 만드는 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착을 보이는 모습은 한계”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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