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무어의 동명 원작은 200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923년 이후 발간된 100대 소설’ 가운데 하나로 선정한 스테디셀러다. 존재가치를 고뇌하는 신경질적 슈퍼히어로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난해한 시나리오는 20여 년간 감독 네 명, 작가 세 명의 손을 거쳤다.
테리 길리엄(‘12몽키즈’), 대런 애로노프스키(‘더 레슬러’), 폴 그린그래스(‘본 얼티메이텀’) 감독이 “내 작품은 영화로 옮길 수 없다”고 공언한 괴짜 원작자에게 질려 중도 하차했다. 메가폰을 이어받은 잭 스나이더는 ‘300’으로 인기 만화의 영화화에 성공했던 감독. 그는 ‘배트맨’ ‘엑스맨’을 썼던 작가들이 갈무리한 시나리오를 원작에 가깝게 수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스스로 원작 팬임을 강조한 스나이더 감독의 ‘왓치맨’은 이미 책에서 봤던 그림을 밋밋한 영상으로 내놓는 데 머물고 말았다.
1985년 미국 뉴욕.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한 뒤 닉슨이 3선에 성공한 가상현실이 영화의 배경이다. 세계를 그렇게 만든 주체는 ‘크라임 버스터스’라는 슈퍼히어로 조직. 은퇴 멤버인 ‘코미디언’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과거의 히어로들이 하나둘씩 활동을 재개한다.
마담 투소의 밀랍인형을 닮은 캐릭터들이 앤디 워홀의 ‘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을 패러디하는 오프닝은 볼만하다. 히어로 중 한 명인 ‘로어셰크’의 말처럼 “가면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숨어든 영웅들”의 흥미로운 탄생기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스나이더 감독은 오프닝 뒤부터 새로운 해석 없이 만화의 장황한 대사를 2시간 41분간 힘겹게 요약한다. 원작 캐릭터만 빌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창조한 ‘원티드’나 ‘다크 나이트’와 대조적이다.
원작의 거대 문어 괴물을 생략한 후반부 뉴욕 대폭발 장면은 만화보다 시각적으로 후퇴한 느낌을 준다. 냇킹콜, 밥 딜런, 사이먼 앤드 가펑클, 바그너를 뒤섞은 배경음악 선곡은 상투적이고 일관성도 없다.
엑스트라 대사에서 로버트 레드퍼드를 로널드 레이건으로 바꾼 정도를 빼면 결말마저 만화와 똑같다. 감정 상태대로 변하는 로어셰크의 마스크, 또 다른 주인공 ‘닥터 맨해튼’의 부활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 동영상으로 보는 것 외에는 만화 팬의 눈길을 끌 만한 요소가 없다. 닥터 맨해튼이 나체로 활보하는 까닭에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