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도 거꾸로는 못 간다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7분


물리학으로 풀어본 영화 ‘벤자민 버튼…’

지난달 개봉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 벤자민(브래드 피트)은 영화 속에서 노인으로 태어나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노화를 거부하고 싶은 현대인들에겐 솔깃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르는 그의 삶도 그리 행복하진 않아 보인다. 물리학적 모순 때문이다.

○ 벤자민의 시간은 물리학적 모순

음식을 먹으면 영양분이 몸속에서 다양한 물질로 바뀌어 저장되거나 에너지를 만든다. 이 에너지가 세포와 장기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고, 새로운 세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이 과정이 오래 반복되면서 노화가 일어난다. 노화는 열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몸을 구성하는 분자가 에너지를 얻어 복잡하게 운동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벤자민은 80세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진다. 남들과 달리 몸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의 흐름은 남들과 같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을 알아가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해 불안해한다.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김성원 교수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열역학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설정된 게 과학적으로 모순”이라고 설명했다. 차라리 의식의 흐름도 반대로 갔다면 첫사랑과의 행복한 기억으로 안타까워하지도, 딸에게 아빠 노릇을 해주지 못해 괴로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물리학의 시간은 3가지

열역학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 말고 현대 물리학에는 우주론적 시간도 있다. 우주가 팽창하는 방향이 바로 시간의 흐름이다.

이들 3가지 시간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간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과 미래를 모르고 과거를 기억하는 현상, 우주가 팽창하는 현상이 다 동일한 방향을 향해 진행된다.

이 같은 물리학의 관점으론 유독 열역학적 시간만 반대로 흐르는 벤자민의 삶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특정 시점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있다. 영화처럼 시간이 아예 거꾸로 가는 게 아니라 현재의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자신을 만난다는 얘기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휘게 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공간을 둥글게 원기둥 모양으로 말았을 때 원기둥의 축 방향이 공간이고, 원기둥을 감싸는 방향이 시간이다. 원기둥을 감싸며 시간 방향으로 가면 다시 처음의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이처럼 시공간을 구부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중력이다.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휜 공간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며, 인공위성과 지구의 시간이 다른 것도 중력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휘어진 공간에서 물체가 움직이면 중력이 파동 형태로 퍼져 나갈 거라고 물리학자들은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중력파다. 중력파를 관측하면 시공간의 개념과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벤자민 버튼의 비밀도 밝혀질지 모른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이형목 교수는 “서울대와 부산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연구원 등 10여 명으로 이뤄진 한국 연구팀이 올 9월 미국 중력파 관측소의 연구에 참여 신청을 할 계획”이라며 “중력파 검출은 아인슈타인 이론을 증명할 뿐 아니라 중력파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열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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